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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0회 작성일 23-05-19 08:30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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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척추가 반으로 접혀 푸른 결정체 안에 누워 있었다.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거울만이
그녀의 친구였다.
이끼 낀 담벼락을 기어오른 덜 익은 파란 포도알, 귓등이 자꾸 흘러내리는 사루비아꽃들, 정지하지 못하는 청설모들,
그녀가 적막 속에서 죽여 버린 것들이 아주 많았다.
그러면 그녀를 가둔 사방 벽들이 점점 더 그녀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일기를 썼다.
그녀가 일기를 쓰는 것인지,
아니면 일기가 미래의 그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인지,
어쨌든 뜨거운 페이지들이 저절로 넘겨지며
그녀의 망막 위에 금가루들을 뿌렸다.
서정시가 그녀로 하여금 태아를 자궁 밖으로 밀어내지 못하게 했다.
일기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래서 보루네오섬 하리아트산 정상에 올라 분출하는 화산을 내려다보았다.
뜨거운 색채들이 검고 요동치는 적요 안으로부터 쏟아져나오고 있었다.
피부 검은 소녀가 방금 낳은 아이 하나를
거센 폭포 아래로 던졌다.
미끌미끌한 물이끼들이 비명과 함께
청록빛 솜털을 곤두세웠다.
아우성 치는 물안개의 망막에 예리한 바늘을 꽂았다.
그녀는 자궁 안 깊숙이로 피뢰침을 내려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폐 한쪽이 썩은 과즙을 내는 것을
불 붙어 허물어져 내리는 사방 벽들 안에
가만히 누워
밤하늘을 차갑게 지나가는 은하수를 바라보듯이.
메스 하나가 그녀의 자궁을 안으로부터 길게 그었다.
일기는 또 이렇게 적혀 있었다.
철조망 바깥으로 군화를 신은 아이들이 걸어 나왔다.
포탄에 맞아 팔이 떨어져 나간 아이들, 머리가 쪼개진 아이들, 얻어맞은 자리가 멍들어
사람 꼴이 아닌 아이들.
그 아이들이 한꺼번에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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