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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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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278회 작성일 23-06-04 00:01

본문

지병



 사십 계단을 끼니처럼 오르락내리락했던 그 시절, 


 전교생이 킬링필드를 관람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 길섶마다 사후 경직의 시취가 깨진 보드블록 사이로 샛노랗게 꽃대 올리며 가는 발목을 붙잡고 있었다 


 어스름이 계단을 따라 공장에 일 나가신 내 어머니를 마중 나가는 저물녘, 하루를 건너온 어른들이 벼슬을 세우고 고래고래 수탉처럼 목청 돋우는 비릿한 골목길엔 죽지 못한 주검들이 발린 생선 내장처럼 여기저기 널려있었다 


 짙은 어둠을 덮고 깨어난 아이가 계단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서자 아이는 조각칼을 들고 내 망막을 마구 쪼았다 그리고 환하게 웃으시는 내 할아버지의 미소에 끌을 대고 망치질로 날려버렸다 


 손 끝에 거슬리는 거스러미들 손톱을 물어뜯었다 햇살도 몸살을 앓았는지 비구름이 몰려왔다 소나기가 빗발치던 날 내가 애정결핍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아프가니스탄은 연일 죽음이었다 소나기가 지상으로 폭격을 가하자 숱한 주검들이 을지로 3가 지하철역으로 쏟아지고 있었다 바그람 한국병원으로 가기로 결정된 그날,


 해수면으로 쿠로시오 난류가 쭉쭉 뻗어가고 있었다 나는 발밑이 편한 등대 배 대는 자리에 내렸다 마름질을 하고 캐스팅을 했다 쭉쭉 뻗어가는 구멍찌가 내 유년의 망치질에 구멍 난 심장을 거두어 수평선 너머 사십 계단을 밟고 우주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갔다


 조리개가 활짝 열린 내 망막 속으로 시스틴 성당의 천장화가 마리오네트처럼 출렁거리고 있었다

댓글목록

다섯별님의 댓글

profile_image 다섯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아침 커피향에 빠져 콩트시인님의 시를 음미해 봅니다
저는 장애가 한 두가지여야 지요 ㅋㅋ
그래도 웃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시를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콩트 시인님!

콩트님의 댓글

profile_image 콩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앗, 시인님~^^

종일 방구석을 지키던 아이들을 볼땐 제발 기어나갔음 했는데
막상, 아이들이 떠나간 썰렁한 집에서 아내는 핸드폰을 저는 노트북을,
각자의 자리에 앉아 휴일 아침 아메리카노 한 잔 하고 있습니다. ㅎ

늘 글 같지도 않은 졸글이나 올리는 제가 부끄럽기도 하고요,
그래도 좋게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휴일 잘 보내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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