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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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이 편지를 보냅니다
가던 길 멈추던 때가 있었다 물안개가 첫닭 울음소리처럼 벼슬을 세우고 수면의 등짝을 후려치고 있었다 여명이 몸을 채 풀기도 전에 동네 목욕탕에 첫발을 내디딘 욕객처럼 뱃사공을 수소문하자 머리맡에 놓아둔 자리끼처럼 읽다만 책장 속에서 삽화가 된 금발의 소년이 재재바르게 걸어오고 있었다 지난밤 어머니의 장독대에서 몰래 꺼내온 별처럼 겸연스레 조바심 난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손전등으로 아이의 발치를 사선으로 비추자 여섯 살 때부터 여물 주던 노새 같은 사이라고 주저리주저리 쫑알거렸다 보트가 수면 위로 빙하처럼 미끄러지자 아이의 발자국을 졸졸 따라 간 솔바람에 버들강아지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고 새침데기 흘수선이 애인처럼 수면을 부둥켜안았다 바리움처럼 스며든 그녀의 체취에 전두엽이 혼미해질 무렵 나도 모르게 사백어처럼 투명한 내장을 호수면으로 줄줄 흘리고 있었다
햇살을 물고 수면으로 파문이 일렁거리는 날이면 가던 길 멈추던 때가 있었다 조리개가 활짝 열린 호수면으로 아이의 발자국이 재재바르게 꼬리지느러미를 살랑살랑 흔들고 있었다
댓글목록
다섯별님의 댓글

그곳에 언제 찾아가 호수물에 발이나 담굴 여유나 시간이 허락할런지요
내 버킷리스트에 포함시켜 보렵니다
호수처럼 잔잔한 콩트시인님의 시를 감상하고 흔적 남기옵니다.
콩트님의 댓글

아이고 다섯별 시인님^^
졸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리스트의 순례의 해라는 피아노곡을 감상하다
발렌제에 대해 몇 자 적어 봤습니다.
저도 그 호수가를 직접 방문한 적은 없습니다.
죽을 때 까지 가 볼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만....ㅎ
댓글 주셔서 감사드리고요
행복한 저녁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