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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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울타리
쏟아지는 빗속에 섬이 되어
귀에 익은 발자국 소리를 기다리는 일
깨진 보도블록을 눈으로 끼워 맞추며
늘어진 전깃줄에서 뛰어내리는
빗방울의 궤적에 나를 비춰보는 일
어제의 나와 낙차 큰 지금의 나를 빗물에 씻어 건져내는 일
우리가 알던 울타리는
이미
범람하는 물살에 머리칼을 풀고 갔다
내가 나를 기다리고 마중 나가는 것이
하루의 일과인 내가 어디론가 흐른다는 건
울타리를 벗어나는 일
구름이 머무는 곳이 비의 집이어서
구름을 지나면 비를 피할 수 있지만
그래도
내가 울타리 밖으로 떠내려가지 않도록
비에 젖은 한 줄 문장으로
나를 꾹꾹 눌러 견뎌보는 것이다
댓글목록
다섯별님의 댓글

비에 젖은 한 줄 문장으로
나를 꾹꾹눌러 오늘을 견뎌보는 것이다
마지막 연이 절창이십니다. 달팽이시인님
마음같아서는 저를 가둔 이웃집 울타리도 비를 따라 흘러갔으면 합니다만
그럼 너무 욕심부리는 짓이겠죠 ㅎㅎ
잘 감상했습니다.
힐링님의 댓글

심도 깊은 울타리의 사물을 내재율로 불러와
풀어내는 기교가 가슴을 젖어들게 합니다.
달팽이 시인님!
tang님의 댓글

형용하여 자기를 아름답게 하는 일, 순수의 度에 이르는 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