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생전후(周生傳後)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송도의 비어버린 궐터 樓階에 기대어 취해 잠들려는 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름은 주생이며, 명에서 떠돌다 징병을 당해 조선 땅에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을 해 왔다.
그가 떠나온 이야기의 골자를 얘기하니 아래와 같다.
웃기지?..
바닥에 물건 하나를 떨치는
그 우연한 사건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릴
가능성이 젖혀진 거야...
일생의 가장 토 쏠리는 일이란,
떠나온 곳이랑 있는 곳이랑 너무 멀어서 생기는
위상 차이에서 오는 멀미인 거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거기서 망령이
미친 듯 튀어나와 모가지를 잡아끌어가는 느낌이.
남들 다 하나씩 끼고 안정을 얻는
고향산천이 없는 새끼가 돼버리는 거지.
그런 인종이 보통 가장 평온한 얼굴을 한다.
실은 뒤틀려 죽는 고통을 배속에 숨기면서도, 죽을듯이 참아내는것이오.
더 웃긴건 왜 참는것인지 지들도 몰라.
사나이가 죽을 시 앙앙 안 울고, 억 소리만 내고 엎어지듯이
참는 본능, 창자가 시키는 걸 거스르는 본능.
왜 그런 게 신체에 남아있는지 참으로 의문이오.
나는 그 참음 때문에 지금 이리 되어있는데.
그 말을 듣고 종이를 꺼내 양 끝에 두 점을 찍고 반으로 접어 겹쳐 보이니, 주생이 “그 말이 맞다.”하고 즉시 죽더라.
그 길로 나는 바다거북이 자기가 알을 깬 모래언덕으로 도로 기어들어가고 갓난애가 자기가 나온 곳으로 도로 빨려들어가듯이, 뜻한 바 있어 떠났던 고향 북수리(北水里)로 되돌아갔다. 애송이 때 우물쭈물하여 놓친 여자란 여자는 시 써주는 자리에서 전부 취했다. 시재(詩材)가 떨어지면 서당질로 순진한 마을아이들을 꾀어다 목돈을 만들고 이를 고위 공직자 중 가장 딸이 예쁜 자에게 전달하였다. 그 집안에 장가를 가 영주(領主)로서 호식하며 매일같이 크고 검은 수레를 끌고 밤마다 비파 줄을 난폭하게 뜯어 그 소리를 전기 신호로 증폭시켜 고요하던 마을을 들었다 놓으니, 감히 손가락질할 자가 없었다. 어느 날은 직접 보리로 빚은 술 열 말을 마시더니, 죽으면서 하는 말이 이와 같았다. “나는 본래 강남의 특별히 초대받은 자만 출입하는 난교장(亂交場)에 갈 지위를 얻으려 힘쓸 심사였다. 하지만 문득 생각을 바꾸어 남의 순박한 꿈을 오히려 빼앗는 처지에 서니 그 즐거움을 이루 말할 수 없구나! 이제 나는 젊음이 다하고 피부에 주름살이 생겨 무엇을 하든 꼴사나운 몰골이 되었으니, 후환을 남기지 않으려 이미 꼭대기까지 오른 바 있는 삶을 미리 끝내 놓는다.”
댓글목록
tang님의 댓글

尊의 아귀에 들었습니다
熱의 가늠이 자존의 부름과 같이 했습니다
형언되어 아름다워지는 길을 향했습니다
머니코드님의 댓글의 댓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으시는 시에서 많은 공부가 가능합니다.
상당산성님의 댓글

차원높은 시를 읽다보니 제 일천한 생각에 언듯 김시습의 금오신화가 생각나네요
좋은 시 잘 읽고 한수 배우고 갑니다
건필하시길 빕니다,
머니코드님의 댓글의 댓글

금오신화 같은 전기소설 흉내를 어설프게 흉내내보았습니다.
전해져서 다행이라는 느낌입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