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를 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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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차창으로 내민
시간의 팔꿈치에 머문 봄햇살
순백의 수줍은 앵두꽃이 다녀가고
큰 나무 그늘 밑 초록 옥(獄)살이에도
사각이는 바람에 흔들리는
찌끄러기 햇살 치열하게 빨아드려
짙은 녹음에서 튀어나온 빠알간 앵두
들치근한 그리움으로 익어간다.
호드득거리는 유월 햇살에
야트막한 초가집 뒤꼍을 지키는
설익은 앵두나무 울타린 동네 애들 부르고
애들 발에 짓밟혀 자빠진 채
저 혼자 누릿누릿 여물어가는 보리
적막이 지겨워 내지르는 뻐꾸기의 절규는
시퍼렇게 땅내 맡은 다랭이 논배미에 빠지며
오수(午睡)에 취해있는 고즈넉한 고향마을
바쁜 계절이 버린 빈집에 정지된 시간
누나와 같이 딴 울타리의 붉은 마음
성가신 앵두씨 발라내고
홍즙(紅汁) 우려내 부쳐먹던
구준한 코 끝에 앵두향기 매단 부침개
오래된 흑백사진의 내 어릴적 추억
어언 칠순(七旬)을 바라본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영사기로 옛 시골의 정겨운 풍경을 돌려보는 느낌입니다.
잘 다듬어진 수채화 한 폭 보고 갑니다.
상당산성님의 댓글

아파트 정원 앵두나무에서 앵두를 따면서 고향에서 앵두 따서 빈대떡
부쳐먹던 생각이 나서 한 수 끄적여 봤습니다. 졸시에 대한 귀한 걸음 감사드리며
수퍼스톰님도 건필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