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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잠자리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10년노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5회 작성일 23-07-18 00:15

본문

고추잠자리    -김병준


오래 땅속에 박혀있던 이야기는

흙을 묻히고 세상에 나왔다

댕강댕강 썰리는 무에 오만짜증을 부린다

무에 바람이 들었다

어떻게 땅속에 집을 지을 생각을

했는지 뽑혀 나올지 알지도 못하고

그 속에서 살림을 차렸다


바람에는 사연이 있었다

너무 추웠고 햇볕이 없었다

수분이 매말라버린 무는

그렇게 바람이 들었다


바람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말아야 할 것과 해야할 것을

알아서 저 멀리 이야기를 싣고

이야기의 서쪽에서 추위를 견디고

해가 뜨는 동쪽을 피해 왔다고


바람든 무를 내팽게치며 또 

한 해 농사는 숲으로 돌아갔다

다 갈아 엎을거라며 씩씩거린다


우습게도 바람은 솔방울을 지나 

고추밭에 앉았다가 고추잠자리처럼 물가에 파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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