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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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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뜬구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03회 작성일 23-09-05 11:09

본문

늙은 부부

 

 

30년 된 우리 아파트 단지의 입구에 재건축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우리 부부는 54년이 넘었다.

하나님, 우리도 재건축이 어려우시면 리모델링이라도 좀 해주세요.

 

늙은 부부란

오래 입어 구겨지고 헤어진 헌옷 같은 것

비싼 값을 치른 것이 아까워 차마 못 버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헐렁한 낡은 바지 같은 사이

 

늙은 부부란

설렘 사랑 다 빠져나가고

미움도 졸업하고

웬만한 막말도 다 건네본

서로 건강하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더 이상 바랄 것도

숨길 것도 없는

알 것 다 아는 사이

 

그래도 우린 늘 싸운다.

주먹질은 않지만

그보다 더 아픈 '말빤치'로 싸운다.

어찌어찌 아슬아슬 참아온 세월

이제는 더 이상 지지 않으려 기를 쓰고 싸운다.

 

그러다가 가끔씩 나는

곱던 아내 주름진 얼굴을 보며

나 때문에 눈물로 파인 자국인가, 져주고도 싶지만

대개는 지난 일을 모두 기억하는 아내 빤치가 더 쎄서

틀린 것을 알고도 오기가 나서 우긴다.

 

침대보다 방바닥이 더 편하다고

발 쭉 뻗고 무례하게 누워있는 아내

제 몸뚱이 하나도 무거워 그런걸

만사가 귀찮아

사는 것도 귀찮아 저러는걸

걸려 엎어지면 다칠세라 갑자기 너그러운 늙은이가 되어 조심조심 비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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