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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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뜬구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0회 작성일 23-10-12 05:09본문
나의 가을
1
아파트 숲에 밀린 나의 가을은 추억 속에서 온다.
낙엽은 나를 가을로 데려가는 추억의 기차표다.
한 잎 주워 들면 나의 가을열차는
노란 은행잎이 겹겹이 쌓인
내 어린 시절의 가을로 나를 태우고 간다.
어렸을 때 나는 일본 사람이 살다 버리고 간
작은 정원과 텃밭이 딸린 기와집에서 살았다.
가을이 오면 어머니는
낙엽이 떨어져 썩는 것을 막기 위해
정원에 있는 우물에 뚜껑을 덮고
낙엽을 긁어모아 태웠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낙엽을 태우면서’에서 이효석은
낙엽을 태우는 냄새를 갓 볶아낸 커피에 비유했다.
나는 그때 커피 맛을 몰랐다.
다만 나는 낙하하는 것들의 마지막에 대하여
시들어 가는 것들의 쓸쓸함에 대하여
詩에 대하여
어렴풋이 생각하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이제 커피를 마실 때마다 가을 냄새와
내 어린 시절의 냄새와
꿈 많은 사춘기 시절과 어머니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에 빠져든다.
도시에서는 낙엽을 태울 곳이 없다.
연기를 보고 자칫 소방차나 달려 올 것이다.
낙엽이 지는 도시의 가을은 나를 쓸쓸하게 한다.
2
나의 가을은 ‘Come September’*도 아니고
‘시월의 마지막 밤’*도 아닌
낙엽이 지고서야 온다.
흰 구름이 몇 점 들어와 잠긴 호반,
겹겹이 떨어져 쌓인 노란 은행잎을 밟으며 온다.
동화 속에서,
상상 속 통나무집 벽난로에서
불꽃을 탁탁 튀기며 타오르는 장작불 소리와 함께 온다.
비록 아파트 숲에서 맞는 가을일지라도
길가에 줄지어 선 은행나무에서 노란 잎이 떨어지면
내 추억 속의 가을은
어머니와 함께
고교 시절과 함께 오고
캐나다의 붉은 단풍이나 로키산맥의 어느 마을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
3
시월은 수확의 계절-
씨뿌리는 희망의 봄과 땀 흘리며 일하던 여름이 지나고
성적표를 받아 드는 가을.
가을걷이가 끝난
나의 빈 밭과 들녘은 쓸쓸하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과수원에 심었던 나무들에 대하여
나는 진정한 농부였던 가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비록 내가 세상에 나눠준 소산은 없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너무나 자랑스러운 몇 알의 과일들-
아이들과 아이들의 짝꿍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을 생각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린다.
4
가을이 오면 나는 하늘이 높아가는 것과
낙엽이 소리 없이 지는 뜻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뜻을 조금씩 알아가는 겸손을 배운다.
거저 받은 목숨
만남의 축복으로 살아온 인생
새삼 감사의 의미를 깨닫는다.
진정한 눈물은 슬퍼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깊은 감사를 알 때 더욱 뜨겁게 흘리게 된다는 것도-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사셨던
나의 어머니 아버지와
삶의 무게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을 내 곁을
지켜준 아내와
자신들의 삶을 쪼개 내 인생에 보태준 수많은 분과
내 삶 속에서 나의 모든 일들을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정교하게 지휘해 주신 하나님
가을은 그 모든 분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게 하는 은혜의 계절이다.
* Come September : 미국 빌리본 악단이 연주한 추억의 영화 ‘9월이 오면(Come September)’의 OST.
* ‘시월의 마지막 밤’ : 이용의 히트곡 ‘잊혀진 계절’의 가사 한 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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