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친절한데 뜻은 더욱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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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2회 작성일 23-12-12 08:33본문
말도 친절한데 뜻은 더욱 친절하다
사문沙門/ 탄무誕无
법석이 끝난 자리
건곤乾坤을 독보獨步하는 주인공,
주인공 체體는 공空이며
맑고 깨끗한 상相은 무無이며
자유로운 기능과 활동은 묘용妙用,
매일 눕고 자고 함께하고 있으면서 이걸 보지 못해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고 살아가면 살아 있어도 죽은 목숨,
식識과 경境(정보와 문자)의 반연攀緣(의지함)을 통해 이룰 수 없다
분별과 구분, 태어남과 선택 이전의 일로서
계합契合하면 스스로 선禪의 여물 맘껏 씹는 붓다가 될 것이고
체득치 못하면 제도권(중생법)에 얼룩진(물든) 혼탁한 중생衆生,
부모는 인간의 육신을 낳았지!
나를 낳은 게 아니다
나(붓다)와 눈이 맞아야
나(붓다)를 낳을 수 있다
육체는 육체로부터 태어나지만
나(붓다)는 육체로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제2의 탄생을 뜻한다
들림과 총명한 머리만 믿고
거기 의지해 가면 나를 보지 못할 것이고
소리에 올라타 색깔(오색, 오음)을 덮으면
나를 확연히 볼 것이다
이 말뜻은 스스로 붓다가 되라는 것이지
부처와 하늘님을 타자他者로 경배하지 말라는 것,
타력他力(부처, 하늘님)에 노골적 의존을 하지 말라!
실제(實際, 붓다, 진여)는 입체라서
중생법(일차원)의 논리적 모순을 그냥 밟고(뭉개고) 지나간다
말도 친절했고 뜻도 또한 친절했다
*
*
법석/
'중생의 야단법석'의 줄임말입니다.
법석 이 한마디에
중생 짓과 알음알이, 번뇌망상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깨침 없는 중생이 하는 모든 짓이 법석(야단법석)입니다.
문자와 정보를 통해 경經과 선각先覺의 글을 읽을 때는
어떠한 한마디, 한마디에/ 어떠한 순간, 순간에/ 어떠한 호흡, 호흡에/
이러한 깨침의 뜻이 담겨 있음을 알고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중생의 잘못된 시각으로 읽는 오류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깊이 있게 읽을 수 있습니다, 깊은 울림(소리) 들을 수 있습니다.
법석이 끝난 자리는 붓다의 자리, 붓다의 경지입니다.
*
나(붓다)와 눈이 맞아야 나(붓다)를 낳을 수 있다/
조사관, 조사선 형식을 취한 깨침의 말로서
언어를 달리 취해 언어의 커튼 뒤에 뜻을 숨기고
위 문장과 다르게 스스럼없이 또 갈기면 이렇습니다.
'나와 관계가 성립되어야 나를 낳을 수 있다.'
위 문장 하나를 갖고 뜻이 같으면서 문맥이 다른
무수한 다른 문장을 인위적으로 저는 조형造形할 수 있습니다.
깨쳐야 이것이 자유자재로 가능합니다.
그건 언어로 깨침(조사관, 조사선)의 뜻이 담긴,
붓다에 대한 뜻이 담긴 형식을 취하기 때문입니다.
깨치면 일상에서 이러한 깨침(조사선, 조사관)의 문장이 그냥 보입니다.
이러한 문장이 막 지나다니고, 막 떠다니고, 막 돌아다닙니다.
나(붓다)와 눈이 맞아야 나(붓다)를 낳을 수 있다/는
붓다와 오입悟入, 붓다와 계합契合,
붓다를 체득體得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붓다, 나/ 모든 인간(만물)의 본래 성품, 본래 얼굴, 본래 모습.
붓다에 대한 살림살이 내어드리며
친절히 가르쳐드렸고, 설명 또한 친절했습니다.
바르게 가르쳐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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