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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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234회 작성일 24-01-23 09:04본문
파묘
1.
무덤 속에 뜬 태양을 끄는 날이다
끊을 수 없는 연결 고리에 포클레인의 굉음 소리 채근하며 달라붙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던,
그래서 모든 이름들이 혼돈의 저녁 꽃으로 시들어버리고
검게 허물어진 흔적만을 그려놓았다
무덤 속 태양을 끄기 전에 핏줄로 묶여있던 이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이가
술잔을 올린다
허공을 더듬는 포클레인의 궤적으로 침묵의 틈이 벌어졌다
고대의 흙이 환하게 품고 있는 고요한 탈육의 기능미, 무덤의 주인은
직사각형 하늘연못에 눈을 담그고 있다
자작나무가 품고 있는 우주의 무한한 깊이가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2.
빛과 그림자가 하나이듯 밤과 낮이 하나이고
탄생과 죽음도 하나, 죽음은 삶의 가변함수이며
삶은 죽음의 점이지대,
뱃속 포대기에 쌓여있던 울음 한 조각을 자궁 밖에서 터트려
허공에 바르는 순간 맥박은 새로운 별이 되어 하늘에 박힐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며 여정의 길이를 토막 내기 시작한다
산 이와 죽은 이들이 셀 수 없이 찍어 놓은 지문들의 서사(敍事)가
손바닥을 징처럼 울린다
세상이 주는 빛을 먹고 지상에서 잘 머물렀으니
남은 생의 편린을 향기 나게 박음질하여 누군가의 가슴에 장서로 남아야 할
절반의 과제를 나는 여기서 부여 받고 간다.
댓글목록
사리자님의 댓글
사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핏줄로 엮인 자들의 무릎 꿇고 술잔 올리는 일
경건한 일이지요
잘 읽었습니다.
힐링님의 댓글
힐링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파묘의 정경 하나 하나를 현미경으로
파고들어 생과 사의 얽긴 시간들을
풀어내는 산 자와
죽은 자가 하늘에서 풀어내는 세계까지
그려내는 파묘의 묘사는
그만큼의 오랜 관찰의 시선이 없이
잡아낼 없는 것이자
이것을 하나 묶어내는 힘 또한
뜨거워 가슴을 데워주는 따듯한
영혼의 술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이 한 잔을 마시며 깊이 취하고 싶습니다.
수퍼스톰 시인님!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사리자 시인님 마음을 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인님의 잘 다듬어진 시 잘 읽고 있습니다. 늘 건필하세요.
힐링시인님,
제 글보다 시인님이 주신 댓글이 더 빛나고 깊고 넓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힐링시인님의 사유 깊은 시 많이 주십시오. 열심히 읽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