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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행위일수록 서둘지 말 것
발걸음, 걸음마다 침묵의 아이들을 데리고
깨끗이 가만히 디디면서
보이지도 않고, 알 수도 없는,
우연처럼 다가설 것
대지(大地)가 하늘에 고백하는 것인 양,
가슴에서 따스한 진흙을 끊어
아련한 소망의 뫼뿌리 그림자를 넘어서
고요한 길을 놓을 것
모든 환희 부드러운 잠에
잠길 때까지...
그러나 산다는 일은 그리도 바빠,
거친 모습으로 달아나는 시간들은
얼마나 여러 번 아름다운 꿈에서
깨어나게 하는지
오늘도 밤하늘에는
꿈꾸는 달의 숨소리 들리고,
창백한 구름 너머
빛나는 별무리는
묵묵(默默)한 공간 속에서
무수한 담화를
오래 오래 발표한다
베풀어진 이적(異跡) 하나 없는,
정적 안에서
- 안희선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잘 읽고 갑니다. 제목과 상관관계를 이어보려고 고민했으나 저의 한계만 확인했습니다.
소리소문님의 댓글

'거친 모습으로 달아나는 시간들은/ 얼마나 아름다운 꿈 속에서/ 깨어나게 하는지' 멋진 표현입니다. 사소하거나 잊어버리고 싶은 나쁜 기억들마저 시인의 입을 거치면 이리도 아름다워 지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