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는 말을 하는 들풀, 그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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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는 말을 하는 들풀, 그 꽃/ 최은영
누구의 손길인지 알 수 없는
잃어버린 의지에 따라 놓인 들꽃을 봅니다.
금어초禁語草,
지축을 흔드는 듯 하는 진동에도
멀리서 불어오는 거친 바람에도
바닥을 붙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제라도 놓아버리고 싶던
진절머리 나도록 강렬한 죄의 습성
그것은 미련일까요?
사멸한 단어들이 낱 글자로 흩어져,
살구나무로부터 불어와 고개를 넘습니다.
낙과의 단맛에 도취된 잔풀들은 슬피 울며, 울며,
들꽃들 사이로 쓰러져 버립니다.
한 겹, 두 겹, 겹겹이 쌓인 둔덕너머로
아스라이 스친 기억들은
서로를 향해 괜찮을 것 이라 속삭이며
발걸음을 재촉하는군요.
‘기억하세요. 당신은 죽었습니다.’
귀에서 왱왱거리는 소리를 무시한 채
말없는 말을 하는 들풀, 그 꽃.
(2023.3.6.)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말 없는 말을 하는 들 풀의 말을 시인님은 들으셨군요.
잘 감상했습니다. 편안한 저녁시간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