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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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59회 작성일 24-03-30 01:36본문
간장게장
서산의 어느 포구에서는 꽃게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게가 왜 맛있는 지 아니? 사람이 바다에 빠져 죽으면 게가 가장 먼저 와서 뜯어먹는단다. 포구 아주머니 말씀이다. 그리하여 나는 오래 전에 헐어 버린 내 위와 농염한 폐와 함께 허름한 테이블에 앉아 게를 씹는다.
바위에 발을 찧었고 집게는 파르르 떤다. 게는 죽어 약초를 넣어 졸였다는 간장의 바다 속에 반쯤 잠겨 있다. 그 작은 접시 안에서도 물결이 인다. 선연한 청록빛 무늬가 미끄러운 등딱지를 기어오르려다 자꾸 미끌어져 떨어진다. 삭아 버린 폐선의 잔해처럼 나만큼이나 게 또한 배가 고프다.
그리하여 게는 나를 뜯어먹고 나는 게의 껍질을 아삭아삭 씹고 노랗게 윤기가 흘러내리는 주황빛 알 뭉텅이를 내 목구멍 안으로 황홀하게 흘려 넣는다. 기름에 흠뻑 젖은 알몸이 심연 속으로 뛰어든다.
은혜롭도다! 게가 내게 말한다. 가늘디 가는 매생이로 내 눈꺼풀과 음경(陰莖)을 동여매었도다. 내 몸을 토막내었도다. 내 몸의 각 부분을 저울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가 하면 형태를 각도기로 측정하고 내 삶의 궤적을 도화지에 암호화하였도다. 그리고 나는 지금 작고 단정한 접시 속에 앉아 네 속의 우주를 측량하고 있도다. 너를 노려보고 있도다. 너를 먹고 있도다.
나는 녹슨 젓가락을 치워버린다. 그리고 귀 기울인다. 내 폐 속에 염증이 들어앉아 그것들이 젓가락을 움직이며 부지런히 무언가를 먹고 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뻘에서 막 나와 온몸이 진흙투성이인 게도 거기 끼어있다. 졸지에 저택이 되어버린 나는 내 과육(果肉)이 어떤 감촉을 그것에게 줄 지도 궁금해진다. 나도 간장 속에 들어앉는다. 나는 게의 탐스런 살을 씹듯 내 맨살을 씹는다. 고통에 절여진 신경을 타고 황홀이 온몸으로 번져간다. 나는 소금에 절여진 회중시계다. 짤깍거리는 시계침 소리가 식당 아주머니를 불러와서 가게문을 닫는다.
寄港地
1.
삐걱거리는 갑판을 넘어
넓게 퍼져 나가는 담배
연기처럼
몇번의 붓질로 스크래치 난
좁은 창살.
비늘과 지느러미를 잃은 여자는 바닷속으로 썩어 나갔다.
2.
아이는 장도(長刀)를 들고 와 매일
허공을 베었다. 아이의 망막 안에서
지나가는 구름과 가끔 쏟아지는 장대비들이
여자의 몸을 때릴 때가 있었다.
문지방을 넘어서도록 문이 열리지 않는 때가 있었다.
배는 목이 마르다. 예리하게 날 벼린 파도들이
배를 때린다. 단두대로 향하는 배. 얼굴 가린 여인들. 잎맥을 따라 바르르
고압전류처럼 흘러가는 회중시계. 가슴을 내놓았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게가 잡혀 가격이 흥정되거나 경매되어
간장게장으로 식탁에 올라 인간의 먹이가 되는 과정을 게의 입장에서 멋지게 풀어 주셨습니다.
시인님 스스로 간장게장과 융화되어 고통을 나누고 식당영업의 마무리 과정까지... 멋지십니다.
코렐리님의 댓글의 댓글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과찬이십니다. 지금 보니 시가 너무 직선적이라서 함축의 묘가 없네요. 수정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