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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톡의 비명(碑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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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코렐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65회 작성일 24-04-04 13:21

본문

바르톡의 비명(碑銘) 




나는 녹슨 계단을 따라 어느 아파트로 들어갔다. 닳아빠진 계단에서 현악사중주의 


음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가령 내 치통은 바이올린소리다. A 마이너가 바닥에서 끼이익 유리조각을 긁는다. 가장 은밀한 곳에서 신음 대신 


파장의 공간을 만든다. 비올라소리와 백혈병에 걸린 오른팔이 


예리하게 어긋나며 서로 만나지지 않는 여자의 윤곽. 빨간 페인트를 온몸에 쏟아부은 음표들이 날뛰고 있는


그 여자의 신경에서는 오렌지향기가 난다. 주황빛 향그런 껍질 안에서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다. 내 발바닥에 


페르시아산 양탄자가 붙었다. 이 모래알은 세계를 방황한 어느 시인의 폐로부터 나온 것이다. 안경을 쓰고 새침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있는 중국인 여자의 하반신은 의자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여자의 얼굴에 엄숙한 서명을 한다. 나는 그녀 하반신의 


문을 열고 검은 복도 안으로 들어간다. 사방 벽이 허물어지는 복도다. 얼굴이 새하얀 유령들이 복도를 걸어 다닌다. 피아노의 검은 


건반과 흰 건반 위를 걸어 다닌다. 아직도 내 시는 땅을 밟지 않는다. 날뛰는 타악기같은 열쇠가 없는 나는 


이 낡은 아파트 안에 방을 하나 갖지 못한다. 나긋나긋 속삭이는 그녀의 방명록을 엿듣는다. 한밤중으로 건너가라고. 그래서 나는


오후를 거치지 않고 단숨에 한밤중으로 건너온다. 발가벗은 시계들. 유방을 드러낸 시계들. 복도에 가득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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