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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꽃 권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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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정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9회 작성일 24-11-21 09:16

본문

늦가을 바람이 불어
근본에서 멀어진 모든 의미들을
수거해갔다

자고 나면
익숙한 이름들이 흩어지고 사라져
조용히 웅크리고 있을 때

갸날픈 푸른 힘줄 하나
하늘 높이 팔 뻗으며
기어이 철재 울타리를
감아오르는 꽃이 있다

처음 세상을 더듬고 만지는 듯한
신생아의  앳된 주먹같은 푸른 손이
담 넘어의 하늘을 야무지게 잡아쥐었다

 맹수같은 한계와 절망의 정수리를
부드러운 곡선의 느린 걸음으로
밟고 또 밟아
허공에 없는 길을 만드는 생떼를 부리는 꽃

나팔꽃이 입술을 크게 벌려
나를 단련한 후에는 내가 정금과 같이 나아오리란
성경구절을  줄줄 읊조린다

곧 하늘에 수거 당할지도 모를
근본에서 멀어진 희미한 내가
나팔꽃 권사님께 한동안 붙잡혀
전도를 당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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