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양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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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80회 작성일 24-11-30 08:54본문
낡은 양말
다섯 가족이 콩깍지 속 완두콩처럼
서로의 어깨를 기대며 살고 있는
작은 기와집에 첫눈이 내린다.
언제나처럼 각자에게 주어진 하루를 보내고
문지방을 넘어 저녁 밥상에 둘러앉는다.
자개장롱 위에서 낡은 양말과 돼지저금통이
눈을 껌벅거리며 논다고 실없는 소릴 하는
아빠를 보면서 또 티브이를 보면서
다섯 개의 숟가락과 열 개의 젓가락이 바쁘다.
만성인 아내의 허리디스크 통증을 연신 느끼며
밥이 목구멍으로 가는지 발가락으로 가는지.
아무튼 아빠는 애먼 돼지저금통과 대화하는 중이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밥상머리에서
더 이상 불운은 논하지 말지니.
어젯밤 세계 뉴스의 곳곳에서 스러져가던
저 불운들을 보라.
서로의 익숙한 체온과 도토리묵 같은 대화 속에서
겨울밤 김장 김치처럼 익어가는 게 가족이라면
이곳이 움막이어도 좋다.
세숫대야에 던져진 다섯 켤레의 낡은 양말이
서로의 발 냄새를 나누며
세탁기를 돌고 돌아
껌딱지 모양으로 붙어 있는 이 밤에
불행은 차라리 머나먼 딴 세상 이야기로 들린다.
밥상을 치우고 설거지를 하는
가족의 귓가에 앙드레 가뇽의 첫날처럼,이 흐르고
창문가엔 오랜 나날 사귀어 온 별빛이 드리운다.
이윽고 행복한 잠이 찾아와
나무 연필처럼 나란히 누운 가족의 머리맡에 놓인
낡은 양말 다섯 켤레,
같이,
잠든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콩깍지 속 완두콩,
도토리묵 같은 대화, 겨울밤 김장 김치처럼 익어가는,
나무 연필처럼 나란히 누운,
정감을 부르는 시어들로 촘촘히 엮으셨네요.
마지막 연에서 손바닥으로 무릎을 치고 말았습니다. 크~~
행복한 주말 보내십시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다정한 시선으로 평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파리가 나무를 떠나면 생기를 잃어버리듯,
생활을 떠난 시를 어디에다 쓸까 , 하는 게
저의 자그마한 생각입니다.
늘 시를 아끼는 시마을의 모든 분들께,
시 쓰는 즐거움이 함께하길 빕니다.
시인님, 제 고마움의 마음을 전합니다.
항상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