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스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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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포장
1
들어본 자만이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총량을 알기 위해서 적절한 측량 과정이 필요하지만 정작 놓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소실된 무게는 흘러가버린 과거의 기억과 같아서 붙잡고 싶지만 당최 테이블 위로 끄집어낼 수 없었다. 포장한 박스의 총량은 박스와 내용물, 테이프와 쏟아낸 땀의 무게를 더한 값과 유사하다. 여기서 땀의 무게는 생략한다. 땀은 너의 어깨에 올려진 화사한 웃음이라고 생각하자.
꽃처럼 펼쳐진 박스는 접는 순서가 따로 있다. 생의 첫 순서가 봄이라면 꽃잎을 접기에 벌써 저물어가는 가을이 온 듯도 하다. 빨간 면장갑이 울긋불긋 가을을 점하고 있다. 사방의 순서는 동서남북이 아니라 박스에 쓰인 글자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방위를 정했다면 뒤집어서 접어야 한다. 거꾸로 접어야 물건을 바로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밑을 막고 보면 새어나갈 일은 없지만 우리네 인생은 꽉 막힌 창고가 아니다. 새어나간 시간은 회복할 수 없기에 일찍부터 님 찾아 이 거리를 방황하는 것은 아닌지. 박스는 탄생한 순간부터 제대로 서기 위해 밑바닥부터 경험하는 것인지 모른다. 글자에 따라 박스의 인생도 다르게 흘러간다.
내용물과 박스는 모양을 맞춰 넣는다. 노란 박스 테이프가 코를 풀며 동일한 템포로 박자를 탄다. 박자가 되어야만 삶의 여정이 순조롭다. 박스는 4,5,6,7,8,16의 장벽으로 쌓는다. 휴일을 제외한 하루의 박자는 장벽의 종류에 따라 다소 상이하다.
파렛트에 쌓았을 때 성곽처럼 입을 꽉 다물어야 한다. 비밀을 엄수해야 하는 요원처럼 입을 딱 맞추어야 한다. 아귀가 맞는 치아처럼 가지런히 교정해야 한다. 그렇게 적이 넘지 못할 성벽을 다 쌓으면 고양이 담 넘어가듯 둥글게 몸을 말아 랩을 감는다. 그렇게 씌운 성벽은 너의 얼굴이다. 오랜 세월 함락 당하지 않은 너의 굳건함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면 다시 아귀를 맞춰야 한다. 너의 얼굴을 뜯었다가 다시 이어 붙여야 한다.
수량과 배송지는 명찰처럼 붙는다. 이는 사람의 방식이다. 막막한 우주로 배송을 한다면 어떤 황홀한 별을 좌표로 할 것인가. 높이도 무게도 방향도 알 수 없으니 이러한 기준은 지구의 방식이다. 무게에서 제외된 땀은 탈지구적이다. 땀은 소망하는 별에 가 있을 것이다. 흘러가버린 과거의 기억도 멀리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과를 마쳤을 때 하루동안 벌어들인 임금은 네 어깨에 올린 그 환한 웃음을 위해 쓰일 것이다.
2
박스에는 격이 있다. 정성을 다한 선물용 포장과 내용물을 보존하는데 급급한 배송박스들. 화물칸에 실린 무수한 공간 사이로 수많은 사연과 함께 실려가겠지만 찌그러들거나 우그러들어도 내용만 충실하면 그만인 배송박스들. 서툴러도 아무나 만들어도 좋을, 시간당 얼마에 해당하는 값싼 포장으로 수취인에게 배송된다. 계산기를 두들겨보아도 기공비에서 우리네 노력을 산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일인지. 받는 사람 얼굴을 가만 떠올려보면 금액에 따라, 포장된 물건에 따라 그 취급을 달리하는데, 실상 박스 접는 나란 존재는 무엇에 따라 그 취급을 달리할 것인지. 오늘도 박스는 어떤 사연을 주고받으며 어떤 모습으로 수취인에게 다가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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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본 자만이 무게를 짐작할 수 있다. 총량을 알기 위해서 적절한 측량 과정이 필요하지만 정작 놓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다. 소실된 무게는 흘러가버린 과거의 기억과 같아서 붙잡고 싶지만 당최 테이블 위로 끄집어낼 수 없었다. 포장한 박스의 총량은 박스와 내용물, 테이프와 쏟아낸 땀의 무게를 더한 값과 유사하다. 여기서 땀의 무게는 생략한다. 땀은 너의 어깨에 올려진 화사한 웃음이라고 생각하자.
꽃처럼 펼쳐진 박스는 접는 순서가 따로 있다. 생의 첫 순서가 봄이라면 꽃잎을 접기에 벌써 저물어가는 가을이 온 듯도 하다. 빨간 면장갑이 울긋불긋 가을을 점하고 있다. 사방의 순서는 동서남북이 아니라 박스에 쓰인 글자를 기준으로 정해진다. 방위를 정했다면 뒤집어서 접어야 한다. 거꾸로 접어야 물건을 바로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밑을 막고 보면 새어나갈 일은 없지만 우리네 인생은 꽉 막힌 창고가 아니다. 새어나간 시간은 회복할 수 없기에 일찍부터 님 찾아 이 거리를 방황하는 것은 아닌지. 박스는 탄생한 순간부터 제대로 서기 위해 밑바닥부터 경험하는 것인지 모른다. 글자에 따라 박스의 인생도 다르게 흘러간다.
내용물과 박스는 모양을 맞춰 넣는다. 노란 박스 테이프가 코를 풀며 동일한 템포로 박자를 탄다. 박자가 되어야만 삶의 여정이 순조롭다. 박스는 4,5,6,7,8,16의 장벽으로 쌓는다. 휴일을 제외한 하루의 박자는 장벽의 종류에 따라 다소 상이하다.
파렛트에 쌓았을 때 성곽처럼 입을 꽉 다물어야 한다. 비밀을 엄수해야 하는 요원처럼 입을 딱 맞추어야 한다. 아귀가 맞는 치아처럼 가지런히 교정해야 한다. 그렇게 적이 넘지 못할 성벽을 다 쌓으면 고양이 담 넘어가듯 둥글게 몸을 말아 랩을 감는다. 그렇게 씌운 성벽은 너의 얼굴이다. 오랜 세월 함락 당하지 않은 너의 굳건함이다. 공든 탑이 무너지면 다시 아귀를 맞춰야 한다. 너의 얼굴을 뜯었다가 다시 이어 붙여야 한다.
수량과 배송지는 명찰처럼 붙는다. 이는 사람의 방식이다. 막막한 우주로 배송을 한다면 어떤 황홀한 별을 좌표로 할 것인가. 높이도 무게도 방향도 알 수 없으니 이러한 기준은 지구의 방식이다. 무게에서 제외된 땀은 탈지구적이다. 땀은 소망하는 별에 가 있을 것이다. 흘러가버린 과거의 기억도 멀리서 반짝이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일과를 마쳤을 때 하루동안 벌어들인 임금은 네 어깨에 올린 그 환한 웃음을 위해 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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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에는 격이 있다. 정성을 다한 선물용 포장과 내용물을 보존하는데 급급한 배송박스들. 화물칸에 실린 무수한 공간 사이로 수많은 사연과 함께 실려가겠지만 찌그러들거나 우그러들어도 내용만 충실하면 그만인 배송박스들. 서툴러도 아무나 만들어도 좋을, 시간당 얼마에 해당하는 값싼 포장으로 수취인에게 배송된다. 계산기를 두들겨보아도 기공비에서 우리네 노력을 산출하는 것은 얼마나 어렵고 지난한 일인지. 받는 사람 얼굴을 가만 떠올려보면 금액에 따라, 포장된 물건에 따라 그 취급을 달리하는데, 실상 박스 접는 나란 존재는 무엇에 따라 그 취급을 달리할 것인지. 오늘도 박스는 어떤 사연을 주고받으며 어떤 모습으로 수취인에게 다가서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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