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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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에게
참 미안하다.
너는 한 마디 말이 없는데
나는 말을 많이 해서.
또 작년 여름 비 내리고 바람 불던 며칠 동안
널 홍시나무 밑 화단에 버려두어서.
그래도 너는 꿋꿋이 그 모진 것들을
견디어 내더구나.
화들짝 놀라 아내와 함께 진흙 묻고 바람에
베인 너의 살갗을 씻고 닦으며
미안하다 말해도 너는
아무말 없이 웃고 있어 사랑은,
나보다 네가 승하단 것을 알아버렸다.
씨알 같은 억울함에도 견디지 못하고
밤새 장작불을 피워대는 사람을
너는 별빛처럼 지긋이 지켜보는구나.
빈 밤 빈 방,
너와 함께 듣고 있는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옛날처럼 흘러나오는 첫발자국.
그 흔한 발자국조차 네겐 없는데
무수한 발자국 떨어뜨린 나보다
조용히 넘쳐흐르며 너는
생의, 한가운데를 걷고 있구나.
그러니 미안한,
순간들에게 편지를 써야겠어.
와락 껴안고픈 눈물의 사람에게도.
미안하다.
시(詩)를 닮은 널 앞에 두고
시(詩)의 마음을,
아직도 못 다 헤아리는 내가.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꽃보다 아름다운 사람,
그분이
너덜길 시인님이십니다.
좋은 시
힐링하고 갑니다.
편안한 밤 되시길요.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꽃보다 아름답고,
시보다 아름다운,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여기 시마을 아닌가 생각합니다.
건강하시길.
고나plm님의 댓글

전 개인적으로 반려동물 보단 반려식물이 좋은 것 같아요
이유는 헤어질 때 덜 아프라고, 말입니다 ^^
군자란에게, 란 그 한마디로도 많은 것들이 스며들어가 있을 것 같네요
빠져들지 않으면 스며들 수 없듯이, 말이지요
잘 감상하였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예, 거의 다 죽어 가던 걸
살려서 키우고 있습니다.
해서 끈끈한 마음을 쏟고 있고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나무님의 댓글

너덜길 시인님의 시들은
오래된 흑백사진 같고
들판에 아주 작고 흔한 들꽃 같습니다
잔잔하지만
그 깊이가 깊고 은은해
참 많이 생각나는 시들입니다
읽기 전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 빠져들어갈 준비를
마친 후 읽어야 정신을 차리고 헤어나올 수 있답니다
정말 좋은 시 ᆢ오늘도 잘 먹었습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고맙습니다.
요즘 올려 주시는 시들,
잘 읽고 있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저도 오래 전에 군자란을 화분에 키워 본 적이 있는데
정말 군자처럼 너그럽고 품위가 있어 보였습니다.
반려 식물과 깊게 교감하는 시인님의 마음이 아름답습니다.
좋은 주말 빚으세요.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감사합니다.
어제 오늘 시마을이 화사한 느낌입니다.
참 좋습니다.
시도,
사람도,
꽃들도,
그림처럼 거니는 봄이라서
그런가 봅니다.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