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승 시인 -시집 -죄의 바탕과 바닥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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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승 시집, <죄의 바탕과 바닥>

푸른사상 ・ 1시간 전
분류--문학(시)
죄의 바탕과 바닥
강태승 지음|푸른사상 시선 205|128×205×9mm|160쪽|13,000원
ISBN 979-11-308-2247-1 03810 | 2025.5.12
■ 시집 소개
끊임없이 수행 정진하는 시작(詩作)의 경이로움
강태승 시인의 시집 『죄의 바탕과 바닥』이 푸른사상 시선 205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불가의 선승이 수행하듯 생명체의 허기와 슬픔 등을 화두로 삼고 끌어안는다. 인간의 삶과 죽음조차 구별하지 않고 근원의 죄는 물론이고 가족과 노동과 시간 등을 깊은 내재율로 노래한다.
■ 시인 소개
강태승
1961년 충북 진천 백곡에서 태어났다. 2014년 『문예바다』 신인문학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머니투데이경제신문』 신춘문예 대상, 김만중문학상, 한국해양문학상, 추보문학상, 포항소재문학상, 백교문학상, 해동공자최충문학상, 무성서원상춘문학상, 김명배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 『칼의 노래』 『격렬한 대화』 『울음의 기원』이 있다. 현재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이다.
■ 목차
제1부
물방울과 햇빛 / 민들레 / 소신공양하기 / 벚나무가 피는 뜻은? / 하나로 묶기 / 슬픔의 기원 / 즐거운 수술대 / 하얀 허기와 검은 허기 / 진달래 개나리 목련 / 지구가 생기기 전에 지옥이 도착했다 / 울화(鬱火) 또는 울화(鬱花) / 저승 동행 명령서 / 사랑의 기억 / 슬픔 깎아 먹기 / 낙화 / 정신현상학
제2부
노동하시는 하느님 / 물소와 사자의 지옥 건너가기 / 빗방울의 계보(系譜) / 뼈의 비밀 / 폭력이 푸른 세렝게티 / 흔들리지 않기 / 죄의 바탕과 바닥 / 죄의 꽃이 핀 아프리카 / 염습(殮襲) 또는 빈집 / 죄의 질문 / 햇빛에 시집 말리기 / 나 속의 사람 / 죄의 유효성? / 노동의 선물 / 겨울의 비결 / 맛나게 죄를 먹고 있다
제3부
신비한 거리 / 감자를 심는 시간 / 개의치 마시고 / 절벽에 피다 / 주름 또는 걱정의 힘 / 석류의 발설(發說) / 나이테의 시간 / 막걸리 / 말해봐 / 방(房) 그리고 손님 / 사람 속의 사람 / 쉬운 방법으로 행복하기 / 검은 산 / 지독한 대화 / 불 꺼진 집? / 0실(室)에 입원하기
제4부
논이 사는 법 / 노동 별곡 / 화두(話頭) 또는 화두(花頭)? / 즐거운 쟁기질 / 속도 / 죽음이 웃는 뜻은? / 이탈? 속탈? 해탈? / 방화(放火) / 허물벗기 / 매화가 피는 뜻은? / 죄가 없는 나무가 되어 / 아버지와 이별하기 / 시(詩) 채집하기 / 옷 벗기 / 하느님의 시(詩)를 읽자 / 폭설이 내리는 마을
작품 해설 : 시(인)의 수행 정진, ‘태초의 내재율’에 공명하는-고명철
■ 시인의 말중에서
바위
보릿고개 넘을 때는 으레
우물보다 깊어진 항아리
매양 게서 퍼 올리는 수수 한 줌
항아리처럼 굽어진 어머니의 허리
그래선지 빈 항아리 채우러
울타리 넘는 산그림자 달그림자,
구색을 갖추려 채송화 봉숭아는
추녀 밑으로 오종종히 발맞추고
왕거미 녀석은 복 걸리라고
가끔 항아리에 치는 거미줄
사는 모양이 산비탈이었다
그래, 산속 풀이었다
다시 말하면
눈 녹으면 뒷산에 남는 바위였다
봄 여름 가을 해마다 다녀가
빗금만 늘어도 떠나지 못하고
오히려 이 근심 저 걱정으로
기쁨과 슬픔이 나누어지지 않는,
밭둑에 버려진 돌이거나
산속을 쏘다니는 바람이었다
천둥번개 다닌 길목만 남아
자잘한 웃음이
정수리에 피는 냉이꽃이거나
그림자 슬쩍 내미는 나무였다.
■ 추천의 글
“사천 편의 시를 이십 년”(「불 꺼진 집?」) 동안 쓴 강태승 시인은 하얀 허기와 검은 허기, 슬픔의 바탕과 바닥, 이탈과 속탈과 해탈, 사람 속의 사람 등을 끌어안는다. 울화(鬱火) 또는 울화(鬱花), 주름 또는 걱정, 염습(殮襲) 또는 빈집, 화두(話頭) 또는 화두(花頭) 등도 품는다. 슬픔과 기쁨을 당기거나 밀지 않는 것은 물론 삶과 죽음조차 구별하지 않고 근원의 죄를 먹으면서 죄가 없는 나무처럼 바람에 흔들린다. “희로애락은 하나로 묶기 힘들”(「하나로 묶기」)지만, 말 못 하는 짐승도 바위도 사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마음으로 가족과 노동과 막걸리와 나이테와 신(神)을 깊은 내재율로 노래한다. 시인의 사랑은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별 반짝이고 있는 연꽃”(「정신현상학」)처럼 물에 잠겨 있어도 한 방울 젖지 않는다.
― 맹문재(시인·안양대 교수)
■ 작품 세계
(전략) 차마 말 못 할 숱한 사연을 가진 수좌는 속세를 떠나 불가에 입문하여 도량(道場)에서 불성(佛性)에 이르는 수행 정진 중이다. 이 수행이야말로 물방울이 함의한 성(聖)과 속(俗)의 진성(眞性)을 온몸으로 깨우치는 것이되, 여기에는 햇빛이 온축한 성과 속의 진성이 물방울과 서로 조우하는 가운데 불성을 득의(得意)하는 경이로움의 속성을 띤다. 수좌의 이러한 수행 정진은, 달리 말해 강태승 시인의 시작(詩作)과 관련한 일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태승 시인의 이번 시집을 관류하고 있는 것은 「물방울과 햇빛」에서 음미한바, 수좌로서 시인이 불성을 득의하고자 부단히 수행 정진하는 시작(詩作)의 경이로움 자체다.
(중략)
이번 시집의 제명이기도 한 ‘죄의 바탕과 바닥’은 ‘지옥/천국’의 대위적 인식과 상상에 제동을 건다. 지금까지 몇 편의 시를 톺아봤듯이, 강태승의 시편들은 시(인)의 수행 도정과 다를 바 없다. 「물방울과 햇빛」의 수좌승이 시인과 동일성을 갖듯, 그렇다면 불도(佛道)에 수행 정진하는 ‘수좌승=시인’에게 ‘지옥/천국’은 서로 정반대의 대위적 윤리철학 세계로 함부로 구분되는 게 아닌, 다시 말해 불가의 불이론(不二論)이 함의하는, 근대의 합리적 이성으로 서로 다름을 인식하고 구별짓기하여 타자를 맹목적으로 배척하고 타매하는 것과 다른 차원의 진리 탐구를 요구한다. 강태승 시의 ‘슬픔의 풍요’가 자아내는 시적 공명에 감응하는 이유다. 그러면서 ‘죄’ 자체를 전면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죄’를 낳는, 그리고 ‘죄’와 연루된 것과 절연된, ‘죄’의 어떤 고유 영역을 ‘죄의 바탕과 바닥’으로 구분 지을 수 없다며 수행 정진하는 ‘수좌승=시인’의 존재를 거듭 주목하자.
(중략)
강태승 시인의 시적 수행 정진이 불이론(不二論)과 성속(聖俗)의 포개짐과 어떤 경계의 자연스러운 넘나듦이 함의하는 시적 진실의 도정임을 주목하고 싶다. 아울러 그의 시작(詩作)이 우리의 일상 속 ‘태초의 내재율’을 향한 시의 감응력이 배가하는 것임을 주시하고 싶다. 그럴 때 우리는 시적 화자가 막걸리를 마시며 슬픔과 기쁨이 뒤섞이는 삶의 떨림에 대한 시적 재현으로서의 내재율이 미치는 시의 감흥에 함께 전율할 터이다. (하략)
―고명철(문학평론가, 광운대 교수) 해설에서
■ 시집 속으로
물방울과 햇빛
물방울이 새벽 예불하러 가는 수좌의
발목에 숨어 불당으로 가고 있다
시생대 적시고 원생대 가슴에 고였다가
고생대의 눈동자를 반짝이게 하던
길짐승 날짐승의 발톱과 날개를
세웠던 물방울이 새벽 예불을 한다
하늘 땅 억년에 억년 오르내리다가
수좌의 발목을 적신 아침이다
세상의 슬픔과 기쁨 다녀왔지만
어느 것 기억하거나 저장하지 않고
햇빛에 반짝 웃고 마는 물방울이
오늘은 발목에서 머무는 시간,
구더기 분뇨에 섞이고 개구리와 뱀
뱃속에 있었고 사자 이빨을 적시던
물방울이 지금은 향이 가득한
그것도 수좌와 절을 하는 때,
햇빛이 따라온 것인지 지나는 것인지
낡은 용마루에서 놀다가 대웅전으로
쑥, 들어와 발목을 말리고 있다
물방울 찾아왔다고 대웅전에 서 있다.
죄의 바탕과 바닥
나무는 바탕과 바닥 중 어느 곳에
뿌리를 내렸는지 더듬어 내려가면
바탕이 바닥을 가로막고 있고
바닥이 바탕을 밀어내곤 앞자리에
찔레꽃 피우고 있다는 하늬바람
바탕이 물러나면 보이지 않는 하늘
바닥을 지우면 까매지는 저승길,
사자가 물소의 모가지를 뜯은 것
바탕을 믿고 휘두른 발톱인가?
바닥이 언제나 지켜주고 있어서
오늘 오후도 굶지 않았는지를
알고 있다 끄덕이는 강가의 풀
그러나 말거나 하늘을 이고 있는
바오밥나무 사이로 드나드는 구름,
바닥이 깊고 바탕은 멀고 먼 것인가
하늘을 바탕으로 빛나고 있는 별
바닥을 믿고 밤마다 떠오르는 달
바탕 없는 바닥이 없고 바닥이 없는
바탕을 알지 못함을 가르치는 연못은
바탕을 깔고 바닥에 피우는 연꽃
바닥을 믿고 바탕에 떠 있는 낙엽,
지옥을 바탕으로 큰 것이 천국인가
천국의 바닥으로 온 것이 지옥인가
죄의 바탕을 만나려면 어느 바닥을
열고 들어가야 하고 죄의 바닥을
읽으려면 어느 바탕을 지워야지?
오늘도 태양은 연못의 바탕에 있고
연못의 바닥에서 연꽃이 웃고 있다.
막걸리
길과 길이 꼬이고 접혔을 때
한 잔이면 절로 풀어져
진달래 개나리 얼굴에 피었다
자진모리 휘모리 섞어가며
굽이굽이 돌다 젓가락 툭 치면
가슴속으로 활짝 피었다
벌컥벌컥 마시는 것은
막걸리에 대한 예의
빈 술잔 척 내려놓으면
꽃들이 다투어 피느라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여자는 자꾸 뜨겁다고 했다
주전자로 부으면 향이 솟는
북북 찢어야 맛나는 김치
쌩욕 띄우면 더 맛나는 것
산다는 것에 막걸리를 부으면
멀어진 것들이 막 그리워졌다
슬픔과 기쁨이 뒤섞였다.
[출처] 강태승 시집, <죄의 바탕과 바닥>|작성자 푸른사상
댓글목록
콩트님의 댓글

시집을 내는 일,
세상의 어둠을 갈퀴로 한 곳에 모아 소각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태승 시인님,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지원님의 댓글

강시인님, 축하드립니다
벌컥벌컥 마시면 쉬 뜨거워집니다ㅎㅎ
많은 이에게 위안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시집 출간 축하드립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시집으로 남길 바래요.
늘 건필하소서, 강태승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