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방수페인트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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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수거장에 내다 버린
방수페인트 통속의 끈적이는 녹색시간이 초여름 오후 햇살에 굳어간다
철제 통의 시간 밖 풍경을 깔아 놓고
수없이 덧칠했을 붓끝으로 몰린 햇살이 뭉툭하다
젖은 나비가 어깨에 앉았던 수많은 밤들,
눈물이 흐르고 난 뒤에는
언제나 눈물이 마르는 시간이 필요했다
끊어진 비의 현이 추락하는 소리에
조바심을 넘어 욕 나오는 시간을 적신 누군가의 가슴도
누수된 빗물로 잠 못 들었을
누적된 밤이 말라가는 중이다.
눈물이 흐르기 위해서는 뺨의 벼랑이 필요한 것처럼 가슴에 감기는 비의 현들은
어디선가 끊어졌을 잔혹한 질량을 품었다
틈새를 사랑한 빗물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낮은 출구,
그때마다 젖은 가슴에 그어진 빗금이 엉켜
옹이로 굳었을 것이다.
여러 색깔의 리듬으로 손풍금을 울린 비의 현, 잔설로 화답했던 가슴이
마침내 젖은 시간의 감옥을 벗어난다
배를 딴 물고기의 마지막 미동 같은
누군가의 얇은 웃음소리가 줄에 매달려 수분을 털고 있는 빨래 그대로의 무게다
이건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댓글목록
너덜길님의 댓글

빈 방수페인트 통을
시의 눈으로 읽어내셨군요.
참 박수를 보내어 드립니다.
빈 거기서,
꽉 찬 의미를 끄집어내심을.
이로써 시를 읽고 쓰는 이유를
되새기게 됩니다.
늘 건투를 빕니다.
이장희님의 댓글

시를 이끌어가는 힘이 느껴집니다.
표현을 넘 잘하시니까 시에 빛이 납니다.
좋은 시 잘 감상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힐링링님의 댓글

빈 방수페인트 통
이 자체가 생의 전부를 대변하는 시이기도 합니다 .
한 생애 동안 이곳 저곳 찾아서 덧바르고
모든 것에 중심이 되어 색칠했던 순간들
이제는 쓸모 없이 버려지는 생의 모습들이 잔잔하게
비의 가락에 흘러치는 가락은
꽃상여 소리를 연상하게 합니다.
그냥 지나칠 그곳에서 생을 향해서 보내는
이 통찰의 시간은 애잔하고 가련한 시간의 축적을 통해서
짚어내는 이 눈부심들.............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빛나는 것과 버려진 것의 두 가지.........
후자를 바라보는 시선은 언제나 가슴을 뭉쿨하게
가슴을 후벼파는 이 감성은 무엇일까요. 그만큼
후자에 대한 보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반증입니다.
마지막 연에
이건 그 사람만의 일이 아니다
번뜩이는 이 화두 하나로 모든 것을
관통하는 깊은 뜻을 알 것 같습니다.
늦은 밤 좋은 시간이 되소서.
수퍼스톰 시인님!
고나plm님의 댓글

마음에 든 연 찾기를 해봅니다
<누군가의 얇은 웃음소리가 줄에 매달려 수분을 털고 있는 빨래 그대로의 무게다>
로 하였습니다
상상의 나래에 맞게 시어를 직조 하느라...
잘 감상하였습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너덜길 시인님
오셔서 좋은 말씀으로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젯밤 시를 올리고 피곤해서 잠자리에 들어 이제 답글을 드리게 되었네요.
시인님의 좋은 시 잘 읽고 있습니다.
늘 건필하소서.
이장희 시인님
제 삼자의 눈으로 사물이나 인물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는 시인님의 시 참 좋습니다.
늘 건필하시길 빕니다.
힐링시인님,
많이 부족한 글에 언제나 좋은 말씀으로
좋은 방향으로 저의 시를 이끌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복잡한 건 신경쓰기 싫은데
돈 안되는 시상을 엮는 데는 제가 조금 예민한 거 같습니다.
늘 건필하시고 좋은 하루 되십시오. 힐링시인님.
고나plm시인님
저도 시인님과 동시대를 살아
시인님의 시를 읽으면 아련한 기억을 더듬게 됩니다.
부족한 글에 마음을 얹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한 하루 열어가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