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펠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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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펠러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 안에 머물기 위하여
저기 아름다운 횃불로 둘러싸인 공장에선 선반과 용접기와 절단기로 만든 임펠러가 돌고 있습니다.
자신의 회전에 반하는 모든 것들을 온몸으로 이겨내며 바람의 집, 달팽이관을 돌고 또 돌고 있습니다.
가만히 서 있던 공기를 수직으로 받아 그걸, 바람으로 만들어선 수평으로 보냅니다.
임펠러가 만드는 바위 같은 원심력.
원심력이 만드는 보리밭처럼 출렁이는 바람.
바람은 베르누이의 법칙을 생각하며 공기와 먼지들을 날라 지상으로 보냅니다.
바람 앞에선,
멀리 혹은 가까이 불투명한 몸이 투명해집니다.
겨울 같은 마음이 풀어집니다.
오래된 툇마루를 지나 다락방에까지 바람이 붑니다.
부는 것은 바람이지만 툇마루 위 빨간 고추들과 피부가 흐려진 시래기가 춤을 추고요.
다락방에선 기도들의 향기가 모여 하늘로 올라갑니다.
고추잠자리 기웃거리는 마당의 바지랑대가 들썩입니다.
바지랑대가 받치고 선 빨래들이 합창을 별들에게 던집니다.
배를 깔고 누웠던 생각을 뒤집어버리며 지구가 돌고 임펠러가 돕니다.
생의 골목길마다 임펠러가 바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바람은, 생의 시작점에서 갈라져 전속력으로 내달리고 삶의 마침표 근처에서 감속하더니 묘지 위에 내려앉습니다.
곡선의 달팽이관은 무수한 직선이 달려가는 아름다운 우주.
임펠러는 원형이지만 그가 만들어 떠나보낸 공기들은 직선이 되고 이내 바람이 됩니다.
사랑의 말이, 동그란 마음 지나 직선의 혓바닥을 타고 나오듯 말이지요.
지금 내 마음결을 만지며 흔드는 바람의 이 소소한 두드림을 무어라 부르면 좋을까요.
저기 바람을 만드는 공장 안에선 무진장한 전력, 모터의 힘으로 임펠러가 돌고 있습니다.
레이저로 절단하고 망치로 두드리고 토치의 거센 불로 데우며, 그리고 용접하며 그를 만들고 있는 마음들과 함께.
먼지 묻은 이마에 송골송골 거룩하게 맺힌 땀방울들과 함께.
하여 삶이 다하는 날까지 바람은 임펠러로부터 나와서 사랑을, 무시로 가속 시킬 테고 나는
밤이 새도록,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이는 내 안에 담아 두는 이토록 아름다운 법칙을 생각할 겁니다.
댓글목록
수퍼스톰님의 댓글

회전하여 보내는 임펠러의 바람이
생의 내부까지 깊게 침투하여
헝클어진 마음을 말끔히 헹구고 난 여운이 참 오래 남습니다.
시는 이렇게 짓는 것이다 라는 정수를 보여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이런 소재도 시가 될까,
오랫동안 생각해왔습니다.
주신 말씀이 큰 힘이 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