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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식당에게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75회 작성일 25-05-30 22:03

본문

 

  기사식당에게




  안녕 친구, 그동안 잘 지냈니. 

  며칠전 트럭 운전하며 먹고 사는 오랜 벗에게 전화기 너머로 안부를 물었어.

  아마 그대도 얼굴을 기억하고 있을 지 몰라.

  밥은 먹고 다니는지, 싣고 다니는 바람과 나무과 별들은 여전한지, 

  난 그런 것들이 궁금하더군.

  오래전 포항 국도 진입로 어귀에 서 있던 그댈 만났었지.

  화려한 전광판이 없어도 때깔 나는 인테리어로 입히지 않았어도 

  그대는 애오라지 맛으로만 승부 보았었지. 

  소리가 소리를 부르고 바람이 바람을 쓸어오듯 

  그 허름했던 그대에겐 먼 데로 떠났던 입맛을 데려오고 

  지친 발걸음들을 불러들이고 

  석양을 향해 종일을 달려온 집채 만한 트럭들의 브레이크를 밟게 하는, 

  옹골진 맛이 있었어. 

  나는 가끔 시(詩)가 그랬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 

  허기진 이들이 새금한 맛으로나마 찾아 읽는 시,

  였으면 좋겠다고. 

  그 시절 낡고 입간판 하나 없던 그대의 맛은 

  그러나 입맛을 불렀고 

  입맛은 트럭들을 일렬로 세운 뒤 노을빛 늦은 안부를 묻곤 했지. 

  나의 말이, 나의 시가 

  저마다 사연을 품은 채 국밥 그릇에 얼굴을 대고 연신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오는, 

  찬바람에 퍼렇게 닳은 사람들의 무디어진 식욕을 일깨우는 맛일 수만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어. 

  언젠가 그댄 선들바람의 표정을 지으며 내게 질문을 던졌지. 

  오늘 우리의 삶은, 우리의 시는 맛있는 한 끼일까. 

  잠시 고개를 떨구며 쑥스러워진 나는 그대에게, 

  그대 간직한 맛의 표정은 여전히 아름다운지, 되레 안부를 물어보았고, 

  바람은 느티나무 정수리에 앉아 우릴 바라보며 씨익 웃고 있었지.

  그래 그 땐 그랬었지.

  친구, 오늘은 이만 안녕. 

  바람은, 또 우릴 다녀갈 테니깐.



  

  


댓글목록

고나plm님의 댓글

profile_image 고나plm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디가서 애매하면 기사식당 가면 되지요^^
허름해도 맛은 있더라고요
기사들 입맛이 좀 까칠한 걸 잘 풀어주지요
시인님 말씀대로 소박하지만 정갈한 시 한 편, 같다고나 할까
이따금 그런 시, 읽고 싶을 때 있지요
지금, 그런 시 한 편 잘 맛보고 갑니다
몸에 잘 녹아드는...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포근한 마음을
보태어주시는 것,
고맙습니다.
우리 시마을의 시들이,
기사식당의 맛과 같은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평안하시길 빕니다.

수퍼스톰님의 댓글

profile_image 수퍼스톰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저녁을 먹어 속이 더부룩 했는데
트럭을 일렬로 세워 놓은 기사 식당의 맛보다 더 맛깔스런 시인님의 시를 읽으니
고급 디저트를 먹은 듯 개운합니다.
감사합니다.

너덜길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늘 선들바람처럼,
다녀가시는군요.
고맙습니다.
그래서 시가 참 행복한 하루입니다.
늘 평안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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