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꽃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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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꽃을 바라보며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던*
옛 시인의 시를 생각하며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생을 바라본다.
이쯤에서 작별하고 싶지 않아서
이쯤에서 시를 멈추고 싶진 않아서
난꽃 하나를 더 데려다 키운다.
하늘의 웃음을, 흙의 눈물을
모두 품은 꽃잎 위로
햇살이 뒹굴다 노을 속으로 사라진다.
오래전 교정의 히말라야시다 아래서
숨죽여 읽고 생각하며 참 시를 꿈꾸던 소년은
아직 거짓 아름다움의 더러움을 모르고
아직 가난한 마음이
더욱 아름다운 이유를 까맣게 모르고.
그 땐
말이 시가 되려다 쓰러지고
시가 아름다움이 되려다 찢어져버리길
반복했다.
시인과 작별하던 꽃의 기분을 모르던 나는
내 푸르른 기분으로 시를 받아들였고 시는,
꽃잎처럼 흩어지며 내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
이 푸른 저녁
삶은 가난함으로 시가 되고
시는 가난함을 채움으로 아름다움이 되고
아름다움은 치열함으로 진심이 되는 원리를
다소곳이 가르쳐주는
네 앞에 서서,
이쯤에서 그만 하직하고 싶다던
시인의 마음을 나는 이제서야 알 것 같고.
진심에 둘러싸여 빛으로 안착하는
저 낙화,
이토록 아름다운 작별법을
나는 어슴푸레 알 것만 같고.
*: 박목월의 시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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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님의 댓글

순백의 그리움에 극진함을 이입하면서 소중하고 유일한 생명의 초점을 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