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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
우리는 그 무덤터를 별일 없이 밟았고
무덤은 완행버스 창밖으로 스쳐가는 잊힌 풍경이었고
하굣길
그 파묘한 무덤터에서 숨바꼭질을 하곤 했다
우리는 몰래 광중에 주검처럼 몸을 웅크렸고
술래의 발소리가 등골을 타고 식은땀으로 흘러내렸다
우리는 토끼처럼 땅 속을 떠돌았고 귀신 따위가 허수아비로 여겨질 무렵
어느 집 귀신이 싸지른 똥냄새가 온몸에 도깨비바늘처럼 달라붙었다
눈살을 찌푸리자 묘비처럼 앉은 호명이가 무덤냄새라고 나지막이 말했다
어스름이 무덤가에 웃자란 풀처럼 까치발을 들고 빼꼼히 산마루 내다볼 때
우리는 산을 내려왔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의 무의식이 구구단을 되뇌고 있었다
슬픔의 냄새가 그렇게 지독한 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댓글목록
이장희님의 댓글

마지막 행이 이 시의 핵심 이었군요.
무덤가에서 어릴적 놀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땐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공감하고 갑니다.
늘 건필하소서, 콩트 시인님.
콩트님의 댓글의 댓글

고맙습니다.
마치 숨기고픈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조금 민망합니다.~~^^
남은 오후도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심휴강님의 댓글

콩트 시인의 '발견'을 읽으니, 어린시절의 무덤터가 단순한 놀이공간을 너머
슬픔의 본질을 깨닫게 되는 특별한 장소로 다가 옵니다
아이들의 무심한 놀이 속에서, '어느 집 귀신이 싸지른 똥냄새'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 냄새가 친구의 입을 통해 '무덤 냄새'로 불리는 순간, 아이들은 비로소 죽은 자의 존재, 그리고 그 뒤에 숨겨진 슬픔의 무게를 감각적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슬픔의 냄새가 그렇게 지독한 줄 그때 처음 알게 도었다'는 마지막 구절은, 냄새를 통해 무의식 깊이 각인된
삶의 진실을 담담하게 고백합니다
놀이 속에서 지작된 경험이 존재이 심연을 '발견'하게 하는 강렬한 순간 이었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소망합니다.
..
콩트님의 댓글의 댓글

주신 격려의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심휴강 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