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페이지 정보
작성자 芻仙齋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655회 작성일 18-03-22 16:51본문
사과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한때, 어쩌면 몇 시절에 걸쳐 나는 훗날 내 삶이
크고 넓고 높은 곳에 다다를 것이라 믿었다
크고 넓고 높은 이들에게 길을 물었고
크고 넓고 높은 것들을 찾아다녔다
어딘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더 이상 새치를 뽑지 않기로 작정한 잔설 그윽한 봄날 나는
발 아래 구름 흐르는 산밭, 지루하리 만치 기나긴 이랑 가운데서
키가 열 척이 넘는 고소작업차를 탄 채 뚝,
뚝, 사과나무 가지를 친다
무언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때 되면 꽃필 것이고 그 열매 익을 것이다
알맞은 햇빛과 알맞은 물과 알맞은 바람과 알맞은 거름과 알맞은 벌레와 알맞은 이것저것들이 알맞은 때에 주어진다면
색깔이야 말할 것도 없고 그 맛까지
새콤하고 달콤하고 아삭할 게다
물론, 무언가 알맞지 않은 게 있어
시큼하고 들큼하고 오싹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마침내 다다른 이 산밭이 그러하듯이
뿌리 얕은 저 식솔들에게는 참 미안한 일이지만
나는 아직 알맞은 양을 모르는 여름지기
늘 젖꼭지만 한 소름들을 달고 살아야 한다
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2018. 3. 22. 芻仙齋
댓글목록
서피랑님의 댓글
서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단단한 작품이네요,
잘 감상했습니다.
김태운님의 댓글
김태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혹시, 내가 알던 그 분?
동...
아닐까
싶습니다만...
후속편들이 기대됩니다
香湖김진수님의 댓글
香湖김진수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맞어! 예전의 그 분
소와 대화하던 분 아닌가 몰겠다
느낌이 그래
맞았으면 좋겠다
동피랑님의 댓글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기다리면 이런 봄날도 오는군요.
다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여문 것 깨물긴 힘들어도 여무디여문 작품은 변함이 없습니다.
언제나 여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