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직 인간의 본성(本性, 붓다)에 대해서만 노래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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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663회 작성일 18-06-26 19:06본문
나는 오직 인간의 본성(붓다)에 대해서만 노래할 뿐이다
사문沙門/ 탄무誕无
화두(話頭)만 들면
모든 망상(妄想)이 죽고,
공(空)을 보면
내 불(佛)이네
선각(先覺)!
그들은 나와 너무나 친숙하다
열반의 즐거움도 공에서 생기고
삼계의 윤회도 공에서 일어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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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선시禪詩에 대한 무문관無門關 강의講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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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성(本性)/ 모든 만물의 본래 성품, 인간의 본래 성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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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話頭)만 들면/ 화두를 목 전(前, 목 앞 전방 1미터 내외)에 두고
화두를 또박또박 새긴다, 그린다.
화두(화두의 글자)를 한 획 한 획 똑똑히 그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을 선가(禪家)에서 '화두를 든다'라고 표현합니다.
습이 들지 않으면 단 10초도 제대로 못 듭니다.
마음이 번뇌 망상에 계속 팔리기 때문입니다.
나중에는 번뇌 망상에 사로잡혀
화두는 온데간데없고 번뇌 망상만 치성입니다.
모든 만물은 화두가 될 수 있습니다.
선가에서는 화두를 공안이라 합니다.
공안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선각의
조사선(祖師禪), 조사관(祖師關, 선문답)을 풀 수 있는 도구가(방편이) 되기 때문입니다.
공안은 깨침에 없어서는 안 될 절대적으로 필요한 화두(도구)입니다.
화두만 박살 내면 모든 선각의 조사선을 되받아 칠 수 있는 조사관을 던질 수 있습니다.
화두만 박살 내면 여래선(如來禪)과 모든 선각의 조사선을 다 알 수 있습니다.
어떠한 글자라도 좋습니다.
제가 가르쳐드린 대로 어떤 글자든 잡고 반복해서 한번 해보십시오.
이건 직접 해보시면 자기 자신이 계속 딴 데 팔리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화두는 들고 있지만 계속 다른 데 팔리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오로지 화두 하나에만 일념(一念) 집중이 되어 똑바로 새길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힘이 들므로(엄청난 집중을 필요로 하므로) '든다'라고 합니다.
선가에서는 3분만 화두를 똑바로 들면
"그날 밥값은 했다"라고 합니다.
참공부에 물이 오르기 전에는 그만큼 힘이 들므로 그렇습니다.
강원(講院)에서, 광야와 선방, 무문관에서는 목숨 떼놓고
이 공부(간화선)를 하는 수좌(선승, 참공부인)들이 참 많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를 바르게 깨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선택받은 자만이 깨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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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반(涅槃)/
여러 다른 이름과 뜻이 있으나 여기서는 깨침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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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空)/
본래 성품의 본체(本體), 모든 만물의 본래 성품, 본체가 텅 빈 공입니다.
=> 움직임 없는 움직임, 떠남 없는 떠남, 보지 않는 봄,
웃음 없는 웃음, 듣지 않는 들음, 말 없는 말,
=> 행위 없는 행위, 앎이 없는 앎, 즐거움 없는 즐거움,
걸음 없는 걸음, 머무름 없는 머무름, 죽지 않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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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각(先覺)! 그들은 나와 너무나 친숙하다/
과거, 현재 모든 선각을 나와 동시대인으로 만들었음을 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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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불(佛)/ 내 불(佛)이 곧 당신의 불(佛)이고, 당신의 불이 내 불입니다.
모든 만물의 본래 성품입니다.
우리들의 본래 성품은 일체 차별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두루 갖추고 있으며 평등하고 평등합니다.
읽어보고 부족한 부분은 강의를 조금씩 조금씩 보충해놓겠습니다.
댓글목록
안희선.님의 댓글
안희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인간의 본성은..
제 살아온 경험으로 보자면
조물주 (그가 하나느님이던 비로자나불이던 간에)
가 그 본성에 비통한 탄식을 금치 못하는 것으로 봅니다만
아무튼, 마음의 본 本 자리를 일깨워주시는 말씀에
손 모아 경청하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구요
탄무 시인님,
탄무誕无님의 댓글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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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마음 행위에만 사로잡혀
인간의 본성(본래 성품)과는 영 딴판으로 살아가고 있으므로
주시자(注視者)로(침묵으로 가만히 지켜보고 있는 분으로)만 계시지 않는다면,
'아마' 인간처럼 신체, 감성, 지성 리듬이 있다면 비통해 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일에 종사하나 주인행세는 하지 않는군요.'
=> '아마'라는 말은 다른 사람도 옳을 수 있고, 반대 의견도 옳을 수 있다는 뜻이 있군요.
=> 모든 가능성에 대해 문을 닫아 버리지 않게 하는 말이군요.
손 모아 경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손 모아 고개 숙여 예를 취해 올립니다.
몸이 우뚝 설 수 있도록 건강관리 좀 잘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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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무誕无님의 댓글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만일 당신이 당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당신의 본래 성품을 체득體得하여(발견해서) 깨치지 못하면,
당신은 스승을 찾기 위해서 삶과 죽음의 밑바닥까지 이르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찾은 스승이라도 그가 자신의 본성을 보지 못했다면 그는 당신의 스승이 아닙니다.
그가 십이연기설(十二緣起說)을 암송한다 할지라도 그는 삶과 죽음의 수레바퀴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이러한 스승은 스승이 아닙니다. 단지 선생일 뿐입니다.
한 번만 당신이 당신의 본래 성품의 아름다움을 본다면 그때는 외부 세계의 모든 아름다움은 빛을 잃습니다.
한 번만 당신이 당신의 순수함을 보게 되면 그때 외부의 모든 것은 오염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한 번만 당신이 당신 내면의 광채를 바라보면 그때는 아무리 아름다운 일출 광경도, 석양의 노을도,
밤하늘의 별빛도, 존재계의 그 무엇도 당신의 본래 성품과는 견줄 수가 없습니다.
단 한 번만 당신이 당신의 본래 성품을 보게 되면 걷고, 머무르고, 앉고, 눕는,
당신이 행하는 모든 행위가 당신의 본래 성품이 됩니다.
행주좌와 어묵동정 일체가 당신의 본래 성품이 됩니다.
행위와 무위, 낮과 밤, 삶과 죽음, 전체가 당신의 본래 성품이 됩니다.
본래 성품에 의해 대기묘용大機妙用이 일어나므로 그렇습니다.
본래 성품 묘용이 그러하므로 저절로 그렇게 됩니다.
당신이 내면의 눈을 뜨지 않는 한,
당신은 당신의 본래 성품(부처, 붓다)에 대해 알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