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령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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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8회 작성일 18-07-25 10:47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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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의 꽃
1
폐타이어들을 범퍼로 재활용한 어선처럼
두툼한 진주 목걸이를 두른 중세풍의 귀부인이 있다
네모반듯한 항구에 출렁이는 비릿한 바닷내음 대신에
값비싸게 낯익은 향수가 휘발한다
지금은 여름다운 계절
한 아름의 아름다움이
저 편에 홀로 침몰할 것이다
감독의 큐사인을 기다리는 기나긴 신호가 대기 중이다
피 묻힌 걸죽한 미끄러짐이
아스팔트 위에 둔하게 빛날 것임을 모른 채
2
배고파 목말라 무서워
영단어 숙어처럼 그 뒤에 꼭 따라붙는
죽겠어
저 망설임없는 공간
내 속에 하얀 깃털구름
까만 까마귀 날개 속에 숨겼네
생긴 모양이 이쁜
밤안개 속에 버스 정류장
헹허니
허전한 섬에 떠 있네
달의 정오 기온은 120도
한밤은 -150도
-4도에서 최고의 밀도를 자랑한다는 얼음 같이
낚시바늘에 벌레인듯 허공에 꿈들거리는
내 가엾은 영혼은
주머니쥐처럼 죽은 척으로
둥글게 힘을 끌어 모으네
죽은 자들 만큼 헐값인 사람들처럼
의학이 아닌
공학의 수리 대상으로 내몰린 기계들
나도 그저 어딘가에서 생산된 자일뿐이라네
밤안개는 페이지 귀를 접은 책처럼 덮혀지고
나이트 캡을 둘러쓴 자작나무 한 그루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난감한 순간인듯 하였다네
3
밤안개 속에 한 줄기 비명소리가
어둑어둑해지는 화단에 양팔을 흔들며
턱까지 어둠을 끌어당긴다
땅딸막한 마을버스가 지나간다
호기심에 들뜬 시선들이 창쪽으로 갸우뚱 기운다
범죄자의 길을 주저없이 선택할 예비 후보생들 같이
맞은편 아파트 베란다는 축구장 야간 조명탑처럼 불 밝히고
포도송이 눈빛을 반사하며
빨간 회전등이 밤하늘을 휘젖는다
4
아파트 승강기 헤드에 내려앉은 까마귀떼는
퍽 소리 표면적이 넓혀가는 피웅덩이를 겨냥하고 있다
도마 위에 뛰던 칼질도 헹켈이었겠거니
라면 물도 가사 도우미가 맞춰줬겠거니
무기력으로 떠밀려가는 사람들이
번들거리는 눈동자를 앞세우고 만족을 주워담고 있다
긴 머리칼이 감싼 수박통인지
대갈통인지
폴리스 라인 안쪽에 자리잡고
아스팔트에 은빛 상형문자가 그려지고
다 자란 개의 우르렁거림을 개마스크로도 덮지 못한다
광견병 주사를 맞혔으니
안심하세요
주위를 토닥거리는 아주머니 목소리가 공간을 넓혀 가자
건너편 네온꽃 거리를 향해 슬그머니 빠지는 남자 하나
환멸의 비애조차도 쇼비즈니스다
그 벤치의 가사스실 눈꺼풀이다
5
반쯤 체념한 식당가
뒷골목을 뒤지던 길고양이 뒷모습 같이
여기저기서 떠도는 말세야 말세이거나 쯧쯧
세상 오래 살 일이 아니라니까
어차피 어리석은 문맥이다
모두가 무탈하게 늙어갈 것이므로
6
씻어 버리려면 거대한 쓰나미가 필요하겠어
구두솔보다 짧은 머리칼을 쓸어 넘긴다
안 그래도 성가신 일이 차고 넘치는데
나이테 한 줄 새겨야죠
무슨 개 스테이크 썰어대는 소리야 이건 자폭이라고
2L 뇌수 속에 미수지란 그것 뿐이니
서로 다른 시공간을 헤쳐간다
한없이 피폐해지는 휴머니즘 위에
하루하루는 나 자신을 위한 기념일
7
남은 건
검은 그림자를 거느린 먹구름
그 뒤에 숨겨진 비명을 기록하는 일이다
누군가가 해줬으면 했던 일 일뿐
영웅담 주문 설계는 이렇게 종결되었다
8
태양이 죽고 달이 태어나는 밤
무장 해제된 문장 같으면서도 뭔가가 무너지는 늬앙스인데
철컥이 가닿기도 전에
닫혀있던 문고리를 잡아당기던 여자
순간 접찹제의 순발력으로 밀어넣던
슈트 케이스
키스는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필요 이상으로 휘어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씬은 좀 그랬다
풍경이 급팽창하고 있었다
납작 엎드려 견디는 마른 오징어 피부에
던킨 도너츠 설탕가루 같은
짭쪼름한 소금막 미소로 그 밤을 뭉갰다
9
선행을 인내하며 악행을 소망하는 이 시대
너무 더운 열대야의 도시
개도 껍을 씹으며 멀뚱멀뚱 지나가는 밤
기절하는게 더 시원하겠다 싶어졌다
많이 늦어지는 밤
팔짱을 끼고 발가락이나 까닥거리며
죽을 맛을 느껴보려고
아주 애를 쓰는군
그렇게 말할 카르멘이 기다리는 집으로 갈 것이다
재활용 쓰레기 그물망으로 인어를 낚아올린 것인지
아님 내 라이프 스타일에 굵은 후추가루가 뿌려진 것인지
가이거 계수기가 따따딱거리는 방사능 물질인지
시베리아 횡단 철도나 만주 벌판만큼
큼지막한 호기심이 확장된다
하지만
아름다움에게 의무를 지우지 맙시다 이거나
정지선을 지킵시다
아침 저녁 초등학교 지킴이 노란 깃발이거나
그 오로라 마네킹이 뭔지 모르지만
짧은 휘발성 먹구름이 소나기를 털내듯이
내 작은 오아시스를 적시고 있을 것이다
달덩이도 라지 피자네요 하던
어떻게 그런 상상력이 아무렇지도 않게 쏟아내는지
정말이지 남남을 냠냠거리는 소설가 같이
어떤 시점이 자연발화를 일으키는지
자전거 바구니에 쑤셔넣는 키 큰 대파이거나
음식물 쓰레기 더미에서나 만날법한
피자 껍데기까지 알뜰살뜰하게 햝는 여자
10
코눈물의 애도는 사치스러운 것
이끼 낀 이정표가 즐비했던
험악한 태백산맥 발걸음에 차이던
돌부스러기가 뭐라 속삭이던가
별빛이 총총이 빛나던
침낭 속에 가을은 늘 혼자였나니
그 어느 날
세계가 무너질 것이다
그 표정이 뭔지
잘 안다
변기 물도 못 내릴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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