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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량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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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오영록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35회 작성일 18-07-27 13:36

본문

납량특집

 

 

나는 그 여인을 알지 못하는데

홍살문 위에 솟대처럼 앉아 있은 저것은 늘 나의 가슴을

짓눌러 숨을 막던 그 여인

 

유령은 아니 그 여자는 잠 설치는 여름을 좋아했다

겨울철에도 영안실 냉동기는 트림하듯 크르릉 거리며 돌았고

삼복에도 화장장 화구는 우주라도 녹여야 직성이 풀리려는 듯

불이 꺼질 틈이 없죠

 

악몽에 나타나는 그 여자는

내가 이렇게 늙어도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빨간 내복을 입고

아직도 등장하는 건가요

그 여인은 늘 같은 복장이었죠

신축성이 좋은 아래위 빨간색 내복 목선이 살짝 으스스하게 파인

 

그 여인과 대화를 나눴다든가 아니면 가까운 접촉도 없었어요

그 여인은 눈도 코도 입도 귀도 없는 얼굴로 나를 보는 듯 한 느낌만 있으면

무릎이 가슴에 닿을 정도로 다리를 채 올리며 어디론가 뛰어요

히히히 웃음을 흘리면서 말이죠

 

순간 나의 심장은 멈추고 말죠

가끔 아주 가끔 그 여인을 볼 때마다 심장이 멈추지 않은 적이 없어요

두려워요

그 여인은 어찌나 빠른지 그렇게 사라지는데요. 발바닥을 본 기억은 없어요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한번 멈춘 호흡은 옆에서 누가 흔들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았어요

비명을 들으면서도 꼼짝할 수 없어요

심장이 멎어 있기 때문에 움직일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어요

 

아직도 저기 어디쯤 그 얼굴 없는 빨간 내복의 여인이 훔쳐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순간, 세상은 너무 고요하고 광활한 느낌이 들어요

바람도 없고 그렇다고 달빛도 아니고 푸르스름한 어둠이 안개비처럼 내리는 것 같아요

 

어떤 전설의 고향에서 주인공이 되곤 해요

그 빨간 내복은 어느 수학여행지 서낭당에 걸렸던 것 같아요

동네 10년 수절과부를 떠꺼머리총각이 몹쓸 짓을 하는 바람에 면도날로 손목을 긋고 죽어 동네가 폐허가 됐다는 그래서 그 내복을 걸어 놓았다는

 

삼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그 빨간 내복이

왜 나를 찾아오는지 모르겠어요

 

난 떠꺼머리총각도 아닌데 말이죠

 

컥컥거리는 날엔 또 빨간 내복을 만났느냐며 아내에게 통박을 먹곤 해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냐고요

이렇게 무더운 삼복 때면 연중행사처럼 치르는 발간 내복 소동에

등골이 오싹하기도 해요

 

더 오싹한 것은 왜 그리 둔박하냐는

아내의 날카로운 눈빛이기도 해요

오늘 또 발간 내복을 만나면 모래는 더 무서운 눈초리가

기다리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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