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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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이름
나싱그리
어느 해 겨울
추수가 끝난 들판과
아침 연기 피어오르는 지붕이
하얗게 눈발로 흩어지던 날
나는 이름을 빼앗겼지요
혐의자는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자선사업가처럼 친절한 척 했지만
나의 이름을 차용한
그는 어디론가 숨고
빼앗긴 이름만 차갑게 남아
추위에 떨고 있었지요
어느 해 겨울
진눈깨비 질펀한 호프 집
그는 거기서
나의 이름을 빼앗을 음모를 꾸미고
내 명의를 저당 잡힌 채
호프를 즐겼지요
나는 멀지 않은 마을에 있었지만
시간은 대설주의보에 가로 막히고
내 이름을 잃고 홀로 남아서
아무 것도 모르고 찬바람만 맞고선
눈사람을 미워하고 있었지요
이후 나는
잊혀진 겨울이 눈에 밟히지 않아도
내 소중한 이름을 아무렇게나
버려두지 않았지요
아무도 모르는 어두운 서랍 속에
내 정체를 숨기고
슬픈 태양이 오랜 잠에서 깨어나
환하게 웃을 수 있게 되기까지
가슴에만 이름표를 묻고 있었지요
댓글목록
부엌방님의 댓글

시가 너무 좋아요
제이름 감추게 되는 계기가
되었네요
새해복 많이 받으셔요
나싱그리 시인님^^
감사합니다
나싱그리님의 댓글

세상 살면서
작든 크든 트라우마 하나씩은 스치지 않았는지
같은 태양이라도 환하게 때론 슬프게 다가오지요
감사합니다, 부엌방 시인님 *^^
주손님의 댓글

단막극 한 편 잘 감상 했습니다^^*
나싱그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창방도 빛내주시기 바랍니다*^^
러닝님의 댓글

트라우마를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하시다니
시인은 역시 아무나 할 수가 없는 듯 합니다
나도 열심히 하면 될런지 참 아득하기만 합니다
감사합니다 나싱거리시인님
나싱그리님의 댓글의 댓글

아픈 기억마저
세월은 포근하게 어루만져주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러닝 시인님*^^
선아2님의 댓글

보증이라도 서 주셨나요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노하우까지
기가 막히게 잘 보고 갑니다 나싱그리 시인님
나싱그리님의 댓글의 댓글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니
트라우마가 더 크지요
그러나 세월의 힘은 이제 그 트라우마를 넘어 시라는 선물까지...
감사합니다, 선아2 시인님
꿈길따라님의 댓글

세월이 흘러가도
마음의 상처는 심연에
스미어 들게 마련이지요
저도 그런 경험있어
가슴에 자줏빛 피멍에
한동안 숨소리 조차
쉽게 쉴 수 없었던 날들
심연의 고인물 일렁이곤 해
피폐함으로 몰고가더니
세월이 약이 된 건지
다행이 사그랑 주머니에서
똬리 틀고 앉아만 있네요
*****************
가슴 아픈 일입니다
새해에는 모든 일에
형통의 복 따르길....
두 손 모아 기원해요
나싱그리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이렇게 또 시로 받아주시니 힘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