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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칼의 항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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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작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27회 작성일 19-01-19 21:12

본문

늦가을 빈 가지가 썰렁한 것이

떨어지는 낙엽 탓인지

낙엽을 놓아버린 가지 탓인지


나는 지금 영문 모르고

뼈를 녹일 불의 체벌을 기다리는 녹슬어 무딘 칼


한때 나의 벼린 날 끝 닿는 곳 어디서나

더운 피비린내가 차갑게 연출되는 살 떨리는 장면들

한갓 불의 피조물로 태어나

사유의 얼개는 물론 인지의 자궁마저 거세된 나에게

망설임이나 후회 따위는 찰라라도 머물 여지가 없었지

선악 불문하고 나에게 거역이란 곧 존재의미의 소멸이라

칼자루 쥔 자의 뜻이 바로 나의 몸짓이 되었으니

나의 냉혹한 몸짓의 배후는 내가 아닌 주인의 의지


자, 거부의지가 거세된 태생의 원죄를 무엇으로 벌할까


결과에 대한 *무사유의 책임은

행위의 의지 없이도 충분히 무거운가


저항할 수 없는히틀러의 수족이라

무죄를 강변하며 형장으로 향하던 아이히만이 그랬듯

나 이제 내 것 아닌 결과의 책임으로

다시 태어날 그 곳, 불로 돌아가려네


낙엽은 메마른 가지의 탓일까 계절의 탓일까

누구의 탓이던 무심코 벌거벗은 나무는

새로운 탄생을 위해 춥고 힘든 계절을 받아들여야 하지.


*하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악의 평범성과 무사유의 책임을 강조함.

댓글목록

향기지천명맨님의 댓글

profile_image 향기지천명맨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작손님
잘 읽었습니다
무심코 벗은 나목의 윈죄는
낙엽때문이지요
이파리 말고 저 무수한
가지들를 덮을수 있으리오
나목처럼 계절 타지 마시고
따습게 잘 보내는 겨울되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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