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무를 알아버린 날엔 동묘에 나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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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아무르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12회 작성일 19-01-21 08:43본문
허무를 알아버린 날엔 동묘에 나가보라
아무르박
사람이 그리운 날엔 동묘에 나가보라
손때묻은 아코디언과
어느 사랑방의 질화로가 군불 없는 방을 데우고 있다
포대기에 싸인 양은 밥통과
기다림에 익숙해진 투명했던 겨울이
흰 눈에 묻힌 문살 사이로 들창을 낸다
댓돌에 짝 잃은 할머니의 흰 고무신과
고샅길을 네 달리던 엿장수의 가위소리 아득한데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호롱불을 끄면
엿판의 오동나무는 회초리보다 등 푸르다
곰방대에 푸른 새벽이 어슴푸레
솜이불에 어린 양들의 숨결을 고르고
가난했지만 가난을 몰랐다 밥상머리의 수저들이 국그릇을 세던 아침이 있다
허무를 알아버린 날엔 동묘에 나가보라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포장 없는 탁자에 앉았다
고기튀김 한 접시로 막걸리 한 병을 마신다
세상을 다 가질 수 없다면
덤으로 얻은 어묵 국물 한 종지에 마음을 녹인다
시름에 값을 치르고도 오천 원이 남는다
세상의 구석구석 세계여행을 다녀온 적은 없지만
수입 과자 골목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사면
덤으로 이천 원
그래도 허전하다 이 대째 칼국숫집에 가라
오늘 하루 나를 떠난 버스 창가의 세상 풍경이
깜장 비닐봉지에 와서 덜렁인다
아무르박
사람이 그리운 날엔 동묘에 나가보라
손때묻은 아코디언과
어느 사랑방의 질화로가 군불 없는 방을 데우고 있다
포대기에 싸인 양은 밥통과
기다림에 익숙해진 투명했던 겨울이
흰 눈에 묻힌 문살 사이로 들창을 낸다
댓돌에 짝 잃은 할머니의 흰 고무신과
고샅길을 네 달리던 엿장수의 가위소리 아득한데
폭풍이 지나간 자리에 호롱불을 끄면
엿판의 오동나무는 회초리보다 등 푸르다
곰방대에 푸른 새벽이 어슴푸레
솜이불에 어린 양들의 숨결을 고르고
가난했지만 가난을 몰랐다 밥상머리의 수저들이 국그릇을 세던 아침이 있다
허무를 알아버린 날엔 동묘에 나가보라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물고 포장 없는 탁자에 앉았다
고기튀김 한 접시로 막걸리 한 병을 마신다
세상을 다 가질 수 없다면
덤으로 얻은 어묵 국물 한 종지에 마음을 녹인다
시름에 값을 치르고도 오천 원이 남는다
세상의 구석구석 세계여행을 다녀온 적은 없지만
수입 과자 골목에서 과자 한 봉지를 사면
덤으로 이천 원
그래도 허전하다 이 대째 칼국숫집에 가라
오늘 하루 나를 떠난 버스 창가의 세상 풍경이
깜장 비닐봉지에 와서 덜렁인다
댓글목록
목헌님의 댓글
목헌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좋군요. 동묘 ...아슴푸레한 기억을 더듬다 갑니다.
싣딤나무님의 댓글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군요. 동묘...
그런데 선생님 2연 11행 만원의 행복,,발목에 매단 돌덩이처럼 시의 격을 확 떨어뜨리는듯,
구제할 수 없는 기시감 때문에...그대 다른 것은 백석도 울고 가시겠는데요.
지금 당장 동묘로 가보고 싶을만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