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공동묘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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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공동묘역에서 / 백록
당신들 죽으면 양지바른 뒷산에 묻어달라던 유언에 한 치도 어긋남이 없는
그 터무니를 살피고 있다
한 귀퉁이로 하얀 목련의 일필휘지 태세가 예사롭지 않다
하늘 가득 만장의 한지를 펼치고 붓끝을 세우고 있다
배경엔 이미 큰 소낭 몇 그루 짙게 그려져 있는데
아무래도 거창한 동양화 한 폭 붓질할 낌새다
한 눈 팔다 조상님들 안부가 궁금하여 잠시 고개를 숙이는 순간 잔뜩 긴장한 큰개불알꽃이라는 놈들이 목련의 심기를 노려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내 고향마을 이름이 큰개인 걸 보면 이놈들 꽤 근친이겠다 뇌까리다 손톱만큼의 초라한 꼴이 이름과 걸맞지 않다며 족보를 살펴보니 봄날이면 양지 바른 곳에 연보랏빛으로 제일 먼저 피는 꽃이란다. '오오이누노후구리'라는 어벌쩡한 왜놈들 근본도 모르는 말 그대로 따라 불렀단다. 이름과 썩 어울리지 않아서 '봄까치꽃'이라 고쳐 부르기도 했단다. 비록 하루살이라지만 이틀을 살고 시들해지면 무슨 짝에 쓰겠는가. 이 적적한 곳으로 찾아온 봄을 조상님들께 잽싸게 고하고 있는 저 갸륵한 심사, 어찌 예쁘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오늘 헤어지더라도 새해 이맘때쯤 또 만나면 될 터인데
내친김에 저 이름에 가당치 않은 불알을 떼고
나와 같은 이름 석 자로 줄여봤다
하얀 목련을 보라로 목메며 연연하는
‘큰개꽃’으로
댓글목록
선아2님의 댓글

봄빛 가득한 봄날의 정경이 그림 한폭입니다
오늘 개불알꽃이 큰개꽃으로 이름이 바뀌는 날입니까
조그마한게 아주 이쁘게 나오는데요
잘 보고 갑니다 김태운 시인님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꽃 이름을 몰라 절쩔매다가 어제 늦게야 그 정체를 알앗답니다
감사합니다
두무지님의 댓글

가족 공동묘지를 떠올리다가
큰 개불알 꽃에 생각이 미치는 군요
제주에 가족 묘지는 어쩌면 힘들었던 옛날에 모습 자체 입니다
대부분 돌 밭을 정리하고 자리한 봉분들이 지난 격정과 아픔이
고스란이 남아 있는 듯 했습니다
어딘가 피었을 큰 개꽃을 가슴에 새겨 봅니다.
김태운님의 댓글의 댓글

봄을 맞아 여기 저기 꽃 갖다 붙인 꼴이 되었습니다
목련과 큰개불알꽃 사이에서
이 무덤 저 무덤 사이에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