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을 꺾어 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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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을 꺾어 돌면
지평선을 베고 잠든 적이 있어요
만년설의 거대한 산맥이 가로막고 있는
긴 시간을 거꾸로 잘라먹으며 나는 계속
작아지고 있었어요
내게서 자라나는 나를 잘라먹는 꿈
작아진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숫자가 되는 내 그림자에 질식당할 것 같아
매번 치명적일 곳을 골라 밟아보지만
배수로 증식하는 임파선마냥
허리춤에 숨겼던 꼬리마저
이제는 맞는 주머니가 없어요
내가 걸어 온 길을 되짚는데
물을 엎지른 기분은 뭔지
지금을 밟는 삯으로 과거를 담아야한다니
명예로운 과거만 담보가 된다고요
포기는 않을 거지만 정 그래야한다면
나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지 못해요
보따리엔 또 숙제만 가득 채워져
골목길 가로등 아래 점이 되었어요
담장 위 고양이가 네 발끝을 세워 늘어진
제 그림자를 끌고 와 내 이마를 핥고있네요
골목을 꺾어 돌면 때로,
나를 보는 위로가 있어요
걱정 말아요(*)
댓글목록
요세미티곰님의 댓글

난 칠흑같은 밤바다가 내 침대위로 밀려오는 꿈을 자주 꾼적이 있습니다 현실이 답답할 때 그랬지요 이 또한 꿈처럼 지나가리라. 잘 감상했습니다
파랑새님의 댓글

감사합니다 요세미티곰시인님
잠을 뒤채는 날이 많아질수록
소유한 게 많아 그렇다는 친구의 말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여 봅니다
이 또한 다 지나가리라!
위안이 됩니다~
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

서로 걱정스러운 마음들만 서로를 걱정해 주지요.
담장 위를 걷는 고양이나, 숙제만 한 보따리 지고 골목길을 들어서는 나나.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골목길을 접어드니 다가서기 어려운 고양이 조차도 먼저 다가와 위로해 주는 걸 테지요.
걱정 말아요.
걱정 많은 내가 내게 보내는 위로가 위안이 되면서도 마음 쓰리게 다가옵니다.
파랑새님의 댓글

맛이깊으면멋시인님 감사합니다
달려가다 가끔 멈추는 연습을 해보는데 성에 차지 않습니다
서툴기만하구요
자기를 사랑하는 연습에 너무 게을리 멀리까지 온 거 같아요~
맛이깊으면멋님의 댓글의 댓글

저는 시인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라서 시인이라는 호칭이 무섭습니다.
좋은 글은 솔직한 글이고, 더 좋은 글은 거기에 따르는 표현이 잘 어울리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파랑새님의 글은 두 가지 다를 보여주어 늘 감사하게 잘 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