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차와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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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와 무지개
우즈베키스탄이 고향인 유리는 마당에 잔디가 있는 빈 시골집 사랑채에 세 들어 산다.
말이 세 든 것이지 40번지의 주인이나 마찬가지다.
감나무 수확 철에나 한두 주일 주인집이 나타나 감 작업을 마치고나면 안채는 다시 자물쇠가 채워진다.
살기 바쁜 주인이 밖에서 살고, 살기 위해 바쁘러 온 유리는 안에서 산다.
유리는 퇴근하면 마당 잔디밭 한가운데에 2000년식 중고 소나타를 주차시키고 흙을 밟지 않고 사랑채에 들어 잠을 잔다.
햇살 좋은 휴일, 늘어지던 늦잠도 지겨우면 심심풀이로 세차를 한다.
흙물 튀어오를 일 없는 폭신한 잔디를 밟고 서서 물 호스를 들이대고 세차를 하다보면 고향에 두고 온 아내가 좋아하는 무지개를 만난다.
그러면 세차는 뒷전이고 흩날리는 미립자에 찾아온 무지개 허리춤에다 아내를 번쩍 들어 올려 태운다.
아내의 눈부시고 풍성한 젖가슴에 얼굴을 묻고 젖을 빠는 아이가 방글방글 웃는다. 2년 전 떠나올 때 이름만 지어놓고 왔다.
아직 엄지발가락을 만져보거나 볼을 꼬집어보거나 곱똥을 찍어먹어본다거나 하지 못했다.
햇살이 기울 때까지 무지개를 만들고 논다.
하루 종일 세차를 하는 일은 지겹지 않다.
무지개는 지구 어디에서 피어도 다 똑같다.
빨주노초파남보 배열조차도.(*)
댓글목록
선아2님의 댓글

힘든 객지 생활속에서도 가족과 함께 하고픈 꿈이 있기에
참고 견디겠군요
잘 보고 갑니다 파랑새 시인님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타국생활은 고향을 등지고 잠시 유보해놓는 시간이어서
그 쪽만 봐도 아지랑이가 피는 거겠죠
지구인.
가족을 위해서라면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빼꼼 들여다보면 바로 수직으로 포개어져 있는 셈이니까요~
봄바람에 나븟나븟 소식 전하는 선아2시인님! 감사합니다~^^
정석촌님의 댓글

그리움을
무지개로 피워 올리셨네요*
만리 타국이면 더군다나요, 가슴에 꽃처럼 피어나겠네요^^
석촌
파랑새님의 댓글

그 집 마당에 목련이 울울한데 그 사이로
세차하다 하늘에 물을 뿌리고 놀길래
그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촌 시인님^^
파랑새님의 댓글

호흡이 꼬이고 마당이 없어진 듯해서
연을 바꿔봤습니다
추영탑님의 댓글

참, 가정적인 직업을 골랐습니다.
홍예문을 오작교로 알고 하루에도 몇 번씩
견우와 직녀가 되겠습니다.
기왕이면 한 쪽은 한국에 다른 쪽은 우즈베키스탄에
걸리도록 무지개를 늘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ㅎㅎ
파랑새 시인님, *^^
파랑새님의 댓글의 댓글

아~~ 그렇군요
지구에 비 내리는 하루 잡아
유리네 사랑채 서까래에 한 쪽 묶고 보내 아이 엄지발가락에 걸어놓아야겠습니다
기막힌 생각이십니다~
감사합니다 추영탑시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