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춘이야, 페츄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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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춘이야, 페츄니아
아무르박
감기 기운이었을까,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시간을 알 수 없는 까만 밤이다
밤이 그럼 까맣지 하얀 밤도 있어
표독스러운 아내의 말이 어둠 속에서 툭 튀어 나올 법도 하다
사각의 링 위에 선수도 관중도 없고 정적이 흐른다
몸을 뒤척이다 돌아눕는데 이런 원수
모로 누운 내 등 뒤로 아내가 붙어 자고 있었다
식구들 저녁은 챙겼을까
아내와 나는 갱엿이다
선풍기를 발아래 켜 두어야 잠을 잔다
우울하다
갑자기 화가 치밀면 분노조절 장애가 온다
작은 것에도 짜증이 난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톨스토이가 이 책을 썼을 때도 갱엿이었을까
부부는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선풍기를 함께 쓰는 동업자
함께 장을 보고
내가 만든 음식이 최고라고 말하면 서로 믿어주는 사기꾼
그런데 어쩌나
하나도 아니고 둘이 망하면 가문이 거덜 날 텐데
우리는 어느 몰락한 왕조의 후예였을까
늦은 저녁을 국수로 때우고 다시 사각의 링
여전히 등을 맞대고 누워 휴대전화기를 탐색 중이다
창문을 열면 봄바람이 침묵의 방을 환기 시킬텐데
몸은 온기를 원하고
불떵이 같은 발은 선풍기를 찾는다
이 꽃이 폐춘이야
무슨 뚱딴지 같은 고백인가
아내의 휴대전화기에
길거리에서 보던 흔하디 흔한 꽃
페츄니아 꽃 한 송이가 화면 가득 피었다
사람들은 왜, 꽃의 이름을 어렵게 짓지
흔한 꽃
지천에 널린 꽃
화단에 핀 꽃
벌이 찾지 않는 꽃
출근길에 보던 꽃
아내의 고백이 꽃말이다
당신과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습니다
댓글목록
쿠쿠달달님의 댓글

오늘도 주인 없는 방에서 놀다 가실분
페츄니아 꽃말 너무 이쁘네요. 편안한 당신
부부가 같이 붙어자는 사람은 행복하세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