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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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424회 작성일 19-05-03 16:45본문
책들
흰 바탕에 그림이 얹혀 있던 마당 문고
마당 문고보다 조금 작았던 명화가 그려진 삼중당 문고
서면 로타리 근처 큰 책방 동보 서적
동보 서적의 라이벌 영광 도서
옛 시집 구하러 다니던 보수동 헌 책방 골목
한번 가 보고 싶었으나 끝내 가 보지 못했던 교보 문고
검정색 양장 제본의 한국문학전집
이웃 정아네 집 안방에 폼 좋게 도열해 있던 세계문학전집
쓸 데 없이 큰 책
너무 깨알 같은 글씨 때문에 짜증나던 책
갈매기의 꿈처럼 얇은 책
끝내 완독하지 못한 파우스트와 단테 신곡과 같이 두꺼운 책
한 번도 펴지도 읽지도 않은 깨끗한 책
엄마가 동생이 라면 냄비 받침대로 써버린 더러운 책
손때 나방 똥자국 땟국물 묻은 책
누런 종이에 누렇게 칠한 누런 책
센티멘탈 터지던 날이면 은행잎 끼우던 책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냥 책
폼도 좋고 색감도 좋아 자주 감상하던 식물도감책
뭐라도 쓰려면 기초 정도는 알아야지 하며 읽은 과학상식책
살 때마다 첫 장에 싸인한 책
껴안고 잠들었던 책
탑처럼 쌓아 놓고 보던 책
국민학교 때 철수와 바둑이책
중학교 때 삼국지 만화책
엄마가 준 차비를 아껴 한 권 두 권 구입했던 책
책 냄새가 좋아 괜히 책방을 서성이게 하던 책
고교 때 등교하는 46번 버스에 같이 타던 여자애한테 보이려고 팔짱에 끼고 있던 책
두 눈 반짝이며 밤새워 읽었던 데미안
문장이 아름다웠던 나르찌스와 골드문트
제목이 마음에 들었던 생의 한가운데
외국 소설 같았던 사반의 십자가
시대와의 불화 속에서 읽었던 이문열의 책들
왠지 연민이 느껴졌던 마종기의 시들
사람들은 살기 위해 파리에 오는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말테의 수기
어렵고 가혹했지만 구원의 그녀 소냐 때문에 완독한 죄와 벌
오 불쌍한 카츄샤여 나도 시베리아의 유형지로 데려가다오 고전이 무엇인지 알게해 준 부활
롯데제과 덕분에 읽었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딱딱하고 낯설었던 이방인
다 읽기가 벅찼던 시지프스의 신화
삭막했던 인간 조건
너무 슬펐던 가난한 사람들
다 읽고 집으로 가던 길에 조용히 울었던 춘희
뒤늦게 알고 읽었던 상남자의 문체 노인과 바다
내용은 잊어버리고 제목만 기억하고 있는 달과 6펜스
그리고 결국 아무말도 하지 않은 전혜린과 하인리히 뵐의 책
격렬한 논쟁 차가운 분석과 증거 그리고 마지막 고백 생각하는 갈대 파스칼의 팡세
아무에게라도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들던 책
헷갈렸던 철학책
더 헷갈렸던 프로이드 정신 분석책
완전 헷갈렸던 아인슈타인의 책
집중했던 역사책
기웃거렸지만 나와는 상관 없던 신춘문예당선시집
명화로 도배된 책
휑하니 흰 바탕만 있던 책
대충 읽었던 책
정말로 탐독했던 책
살다가 잊어버린 책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책
용접하며 먹고 사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았던 책
월급날마다 습관처럼 책방으로 향하게 하던 책
다락에 쌓아 놓고 버릴까 말까 수없이 고민했던 책
불에 태운 책
고물상에 엿 바꿔 먹은 책
가끔 국민학교 때 친구들처럼 생각나던 책
책방에서 우연히 보았던 빵과 성서를 탁자에 두고 기도하는 노인이 배경으로 있던 책
그게 전부야 라고 말하던 그 책
그 해 가을 만났던 우리 목사님의 손에 있던 작은 성경책
너무 빠져 있다고 어머니가 집어던지셨던 책
지금은 어머니와 함께 읽는 책
지금은 내 아내와 딸과 쌍둥이 아들들과 함께 걷는 책
내 영원한 잠에 들어가는 날 내 머리맡에 있기를 원하는 책
* 장정일의 시 '삼중당문고'를 패러디함.
댓글목록
grail217님의 댓글
grail217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너덜길시인님이 들려주시는 책이야기..
보물섬의 보물이 책이 아닐런지..
고맙게 잘 읽다 갑니다..
하늘시님의 댓글
하늘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낯설지 않는 책들이 제법 있네요
그 중에서도 매일 읽는 보물도 있어서
반갑고 좋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시인님
너덜길님의 댓글
너덜길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시에 나와 있듯 저는 용접하는 일로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시인이라는 말은 부끄럽고 그냥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써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