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日記)는 없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본문
일기는 없었다 /추영탑
일기, 그것은 미처 그대에게 보내지 못한 편지의
뒷부분이었거나
그대에게서 온 편지 중 내가 삭이지
못한 감정의 편린이었을 터
일기는 봉오리째 납작한 압화가 되어 있었다
고향에 돌아가지 못한 바람이 이방으로 떠돌다가
우연히 고향사람을 만나 고향이야기로
고향의 밤을 새우는 것처럼 그날의 말미는
언제나 나를 반기는데
질긴 인연들이 언제라도 손을 내미는
그 손을 잡으면 몰입하는 멈춘 세월이
가슴에 쿵 충격으로 내려앉는 느낌
다시는 이어 쓸 말을 잃었고
끊긴 감정의 맥은 시들었고
슬프거나 기뻤거나
일기의 마지막을 잇고자 소진한 삶의 무게에
현재와 미래가 겹치기로 억류되어 있다는 것,
피거나 진 채로 시간 속에 잠든 꽃
하나 씩 끄집어 낼 때마다
누군가를 감싸는 보로기 한 장,
연잎을 제치는 연꽃대궁의 미망으로
세상은 다가오고 멀어진다는 것
옛날을 버렸어도 한참을 버렸을 미증유의
사랑이고 이별이고 다 옛말 되어버린 그날 속,
나를 가둔 일기는 없었다
댓글목록
정석촌님의 댓글

며칠 못 봰 동안에
어쩐지 변심한 내땅인 줄 알았던 까마귀의 아우성에 놀란 충격으로 들립니다ㅎㅎ
천일을 고스란이 간직한 연꽃이 어디 있으리요마는
봄날에 여전하신지요^^
석촌
추영탑님의 댓글의 댓글

누구의 말이던가?
사럼은 언제, 어디서나 홀로이기를 바라는 때가 있는 법,
고독을 터득하자면 불가피한 수련입니다. ㅎㅎ *^^
하늘시님의 댓글

몽당 연필끝에 달린 오늘의 일기
맑음 ,흐림, 비 ...
동그라미에 몇가닥 해의 머리털을 심고
구름을 눕히고
우산을 펼쳐 놓았던 일기장이 납작한 몸을 일으키는 ...추억한켠 그리운 시
잘 머물다 갑니다 고마워요~^^
추영탑님의 댓글의 댓글

어느날이던가? 그쳐버린 일기의 끝,
이어 쓰고자 무진 애를 쓰긴했지만,
더는 이어지지 않는 고뇌가 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은 아닌지 한참 생각을 해 봅니다. 하늘시인님! *^^
두무지님의 댓글

일기에 관해 새로운 해석을 터득하고 갑니다
깊은 사고가 뒤따랐을 내용 ,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평안을 빕니다.
추영탑님의 댓글의 댓글

농사철, 한참 바쁘시지요?
일기는 이젠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더는 이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그 해답으로 글이
필요한가 봅니다. ㅎ 감사합니다. *^^
주손님의 댓글

며칠간의 잠적의 소회가 잊었던 일기장의 변이었나요
무탈하신지요?
멀어진 세월에 화자는 없고 허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추영탑님의 댓글

ㅎㅎ 유탈할 게 없으니 무탈합니다.
그새 집 앞의 넝쿨장미가 봉오리를 열기 시작했고
향이 진하게 풍겨 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라라리베님의 댓글

일기를 쓰지 않는 대신 마음의 방은 더 많아지지
않으셨을까요
언제 어디서나 꺼내볼 수 있는 시간 속에 잠든 꽃
이어 쓸말은 잃었어도
더욱 진해진 향은 앞날을 이어가는 감정의 맥으로
살아남을 것 같습니다
넝쿨장미향이 여기까지 풍겨오네요 ㅎㅎ
추영탑님의 댓글

일기는 사라졌지만, 넝쿨장 미는 핍니다.
아직은 스무 송이 미만이지만 아마 천 송이쯤은
이어 피지 않을까? 합니다.
오늘은 세 번이나 내려가 보았는데 내일부터는
장미보러 가는 횟수가 부쩩 늘어나지 않을까 합니다.
포기로 심은 홍장미와 황장미 두 그루도 곧 필듯,
멍울이 부풀고 있습니다. ㅎㅎ
장미향,. 애드벌룬에 가득 담아 띄워드릴 게요. ㅎ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