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잔의 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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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되새김질하듯
웃자란 허기를 씹어대는 제초기 소리는
잠든 자의 귀에도 들릴 것이다
산 살을 파먹듯
풀숲을 파고들어
쑥대의 허리를 베고 풀의 목을 딴다
산 자를 위하여
뜯어 먹힌 몸에서 풍기는 풀 냄새
푸른 향기를 마신
나는 비릿한 피의 흐름에 어지럽다
피가 흐른다는 것은
피를 주다가 몸마저 허물어 준다는 것
다 주어도 다시 주고 싶다는 것
안으로 허물어지며
밖으로 내미는 풀잎에서 풍기는
저 푸른 체취는
잠든 자와 산 자를 잇는 피의 여진, 아버지의 방식
푸른 시간 밟고 오는 산 그림자
아버지를 맞이하는 기척에
생생한 듯 몽롱한 체취에서 깨어나
정을 떠나보내듯 뿌리는 술 한 잔은
아버지를 보내는 산 자의 유일한 형식
엇갈리는 시간의 갈림길
아버지는 향기 너머로 소리 없이 건너가고
나는 뉜 풀을 밟으며 터벅터벅 건너온다.
댓글목록
하늘시님의 댓글

술 한잔 드시고 평안히 누워 계시겠지요
푸른 체쥐에 젖었다 갑니다
고맙습니다 작손 시인님
추영탑님의 댓글

예초기는 산자와 망자를 교신케 해주는 메신저,
벌써 벌초를 하셨나요.
풀 베면 죽음의 냄새로 다가오는 풀의 향기... 비릿하고 달큰한
냄새가 세상 저쪽을 알려 주는 듯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