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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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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bluemarbl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5건 조회 95회 작성일 19-05-16 08:46

본문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문득,
내가 가보지 않은 곳에 가고 싶었다

미처 수습하지 못했던 삶의 잔해가
휑하니 널브러진 곳에
내가 애써 외면했던 아픈 시간들이
차라리 착한 꿈이 되어,
안개 같은 인간의 숲에서 배회하고 있었다

먼 하늘에서 살며시 내려 온 태양도
대지를 포옹하며, 골고루 구석 구석에
눈물어린 따스한 온기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불안한 건 오직, 나밖에 없었다

언제나 나보다 한 발 앞서 달아나는
내 마음은 여전했다
꿈꾸던 아름다운 삶이 늘 그렇게,
나를 지나쳐 앞서 달려간 것처럼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닌 나

원래 잃을 것도 없건만,
왜 항상 잃고 살아왔다고 느껴졌던지

그렇게 홀현(忽顯)한 구름처럼 걷다 보니,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에서
이윽고 나도 없어지고
저 멀리 보이는 하얀 산 위로
창망(蒼茫)한 허공만 푸르게 빛난다

하늘에 이르는 길이
더 이상, 지상(地上)의 길이 아닌 곳에서
내 앞에 소리 없이 열린다

누군가 오래 전 부터 마음 한 자리 비워둔 곳에
비로소 즐거운 숨을 쉬기 시작하는,
야릇한 영혼 하나가
하늘에서 동아줄을 타고 내려온다

그와 인사를 해야 할지,
망설여진다

하지만, 나는 이곳에서 이미
내가 없어진 것도 모르고

                                                               - 안희선



Free as a bird - The beatles (feat.) Andre Caminski

 

추천1

댓글목록

하늘시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하늘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늘에 이르는 길이 지상의 길이 아닌 곳에서 열린다면...
이 곳에서 한참 머물러 지네요

가보지 않는 곳에 있는 유일한 길일까요..
조용히 머물다 갑니다

최현덕님의 댓글

profile_image 최현덕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늘 길은 누구에게나 약방에 감초 같은 길이지요
한번은 걸어야 하는 그길을 외면 할 수는 없지요
글, 잘 감상했습니다. 시인님!

bluemarble님의 댓글의 댓글

profile_image bluemarbl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언제나 그랬듯이, 먼저 시비걸고 비아냥거리고 - 뭔 중생이 이럴까

삼생인 손가락이 여섯개라서 이곳에 닉도 많지만 그 못지않게
기억력도 좋은듯 (웃음)

근데, 치매는 그 어느 날 갑자기 온다는 거 (기대하시고)

어쨌거나, 삼생스런 건 여전하시구 - 등단사기 件 포함


아무튼, 열심히 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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