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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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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bluemarble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420회 작성일 19-05-25 02:02

본문

비망록(備忘錄) / 안희선


지금은 비관하기 좋은 시간

행간(行間) 사이의 지루함은
기나 긴 실어증이 되고

오늘도 일상의 표피(表皮)는, 속절없이
껍데기를 위한 성(聖)스러운 계약서를 새겼다
껍데기는 가라고?
Oh, No!
차가운 세상 부딪기며 알몸으로 살아보지도 않고,
배 부른 소린 제발 하지 말기를
(申東曄은 빼고)

문득,
묘지로 부터 불어오는 정겨운 바람

언제나 같은 밀도의 공간은 지겨워,
죽어버린 시대가 살아있을 때나
그리워 한다는,
편리한 달변(達辯)의 구실

그러면서도, 시를 쓴다는
낯 두꺼운 얼굴

그놈, 참 맹랑하다




<사족>
 


허접한 글 따위를 시랍시며 써갈긴  내가 너무 한심하고

반성이 된다.

하여, 날 위한 '비망록'이라두 남겨보려고.

동엽에서 曄은 (빛날) 엽.

신동엽, 그의 얘기가 나온 김에 사족으로...


                                                              - bluemar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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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申東曄, 1930 - 1969)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은 일제의 수탈이 한창이던 1930년 8월 18일 충남 부여읍 동남리에서 태어났다.

형제를 여럿 잃은 그의 유년 시절은 친구들과 뛰어놀기 보다는 혼자서 생각에 잠겨 있을 적이
더 많았다고 한다. 어린 신동엽은 자신의 이복 누이인 신동희(1928년생)에 대한 정이
각별했다고 하는데, 이는 태어나자마자 친어머니를 잃은 누이에 대한 애처로움 때문이기도 했다.

1937년 부여 국민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그는 6년간 내리 우등상을 타며 1등 자리를
놓치지 않았고,그런 그에게 부모가 거는 기대는 컸다.
가난한 집 수재들이 으레 그러했듯이 신동엽 역시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학비가 들지 않는 전주 사범에 진학했다.

사범학교는 지방학생들 모두에게 기숙사 생활을 시켰고, 학비를 모두 관에서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높았다.
그러나 당시의 사범학교는 일제가 식민지 통치를 위한 초등 교원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엄격한 규제를 통해 그들이 요구하는 교원을 양상하고자 숱한 제약과 통제를 가하는
곳이기도 했다.

1948년 신동엽은 이유가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전주 사범을 퇴학당하고 만다.
이 해에는 남한 단독선거 반대 전국 총파업시위가 벌어졌고, 제주도에서도 단정 수립에
반대하며 4·3항쟁이 일어났다.
그가 퇴학당한 것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동맹휴학에 참여했기 때문인 것 같다.

전주 사범을 중도에 그만두긴 했지만 초등학교 교원 자격은 인정되어
어느 국민학교에 발령을 받고 부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임 사흘만에 전주 사범 시절 그와 대립하던 사람이 마침 같은 학교에
와 있었던 까닭에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
그의 아버지는 가지고 있던 밭 600평 전부를 팔아 신동엽으로 하여금 단국대 사학과의
등록금으로 주었다.

그후, 그는 50만 명의 젊은 장정들 중 무려 5만명이 굶어죽거나 얼어죽고 전체의 80% 가량이
폐인이 된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
이듬해 2월 다시 귀향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굶주림에 견디다 못한
그는 민물 게를 생으로 잡아먹는 바람에 간디스토마에 걸리고 말았다.
이때 상한 그의 간은 영영 회복되지 않아 결국 그가 나이 40세도 안되어 요절하는 원인이 되고 만다.

신동엽 시인을 두고 반봉건, 반외세의 민족 시인이라고 평한다.
그는 외세의 직접적인 지배 아래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한창 감수성 예민한 시기엔 좌우의
극심한 갈등 속에서 성장했다.
그리고 연이어 들이닥친 한국전쟁이 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상처와 아픔을 남겨주었는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깨우칠 수 있는 일이었다.

전쟁이 끝난 1953년 졸업 후 서울에서 친구의 헌책방을 일을 도우며 자취 생활을 했다.
그 해 초겨울 어느 따뜻한 날 신동엽은 당시 이화여고 3학년생이었던 단발머리 소녀
인병선(印炳善)을 이곳에서 만난다. 인병선은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문리대 철학과에 입학하여
두 사람은 열렬한 연애 끝에 1956년 결혼해서 부여에 신혼 살림을 차렸다. 두 사람은 매우 가난했고,
아내 인병선이 양장점을 개업하면서 비로소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신동엽은 이때부터 본격적인 시인의 꿈을 키우며 보령농고에 취직한다.
그러나 간디스토마가 발병해 각혈과 고열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병을 폐결핵으로 생각했으므로
아내와 헤어져 본가에서 잠시 요양하게 된다. 그는 이 때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창작하여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응모하게 된다.
이때 예심 심사위원을 맡았던 시인 박봉우는 그의 시를 심사하면서 흥분한 나머지
본심 심사위원에게 "굉장한 장시입니다. 문단이 깜짝 놀랄 겁니다."라며 추천했지만
본심 심사위원들은 이 작품에 그리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의 심사위원들은 학연과 인맥을 주로 따지지만서두)

암튼, 당시 우리 시단의 시와는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결국 신동엽의 시는 20여 행을 삭제하는 조건으로 입선되었다.

우리들은 신동엽과 김수영을 다만 참여시의 양대 산맥쯤으로 생각하지만
두 사람의 시세계는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인다. 김수영이 도회지 출신(종로6가)으로
도시적 감수성의 시를 썼다면 신동엽은 농촌 출신으로 농촌 공동체적, 자연 친화적인 시풍을 지녔다.
주제 면에 있어서도 김수영이 모더니즘적 전통에서 출발해 '자유'의 문제를 탐구했다면
신동엽은 이것을 민족의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그의 시에 드러나는 서정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시어들은 그의 실제 삶 체험에서 녹아든 것이었다.
그가 오늘날 참여시의 원조격으로 분류되는 탓에 그의 시어가 지닌 농밀한 서정성을 등한히 하는
경향도 있지만 그의 시가 지닌 품격은 단지 그가 참여적인 강한 메시지를 담은 시를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작품 자체가 지닌 높은 문학성에 기인한다.

신동엽의 작품세계를 논하는데 있어 그의 시가 지닌 참여 의식을 배제할 수는 없다.
당시 우리 문단은 분단 이후 김수영이 일찍이 한탄한 바 있듯이
"알맹이는 다 가 버리고 쭉정이만 남은 상황"에 다름 아니었다.

신동엽의 데뷔 작품인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시 문단의 시풍과 매우 다르다는 이유로
20여행이나 삭제되는 수모 끝에 당선 아닌 입선으로 문단에 나오게 된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50년대 전후의 한국 시단은 마치 90년대 현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창궐했던 포스트모더니즘
논의들과 마찬가지로 알맹이는 빠진 채 허무니, 실존이니를 논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국적불명의 외래사조들이 넘쳐나는 시기에 신동엽의 전통적인 서정을 노래한 듯이 보이는 시는
시대에 뒤처졌거나 오히려 신선하게 여겨지도록 했다.

4월 혁명 무렵의 신동엽은 문단에 데뷔한지 그리 오래지 않은 시기였지만
그에게 있어 암울하기만 했던 역사 체험(이미 이전에 그는 <진달래 산천>,
<새로 열리는 땅> 등을 발표)이 극적인 분수령을 맞이한 순간이기도 했다.
4월 혁명은 김수영은 물론 신동엽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4월 혁명은 오래지 않아 그 숨이 끊어져 버렸다. 김수영은 다시 음울한 어조로 돌아갔고,
신동엽 역시 깊은 침잠의 세계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나 신동엽도 김수영도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간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바퀴를 굴리기 위해서는
시인의 풍자와 예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치명적으로 느낀 시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신동엽이 본격적인 참여시인의 면모를 드러내게 된 계기는 1964년 6.3 사태를 겪으면서였다.
그는 한일협정 비준 반대 서명에 참여하고 <발>, <4월은 갈아엎는 달> 등을 발표한다.
그리고 1967년엔 그의 대표작인 <껍데기는 가라>와 <금강(錦江)>을 발표한다.


* 신동엽 시인 연혁 (1930 ~ 1969)

1930년 8월 18일 충청남도 부여읍 동남리에서 출생
부여초등학교, 전주사범학교, 단국대 사학과 졸업.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석림(石林)이라는 필명으로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입선(20여 행을 삭제하고 당선이 아닌 입선)

1961년 명성여고 국어교사로 취임(작고시 까지 재직)

1963년 <산에 언덕에>, <아니오> 등을 담은 시집 『아사녀』 출간

1966년 詩劇 <그 입술에 파인 그늘>을 최일수 연출로 국립극장에서 상연

1967년 펜클럽 작가기금으로 장편서사시 『금강(錦江)』 발표

1968년 오페라타 <석가탑>(백병동 작곡)을 드라마센터에서 상연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별세. 경기도 파주군 월롱산 기슭에 안장

1970년 4월 18일 부여읍 동남리 백마강 기슭에 詩碑를 세움

1975년 『신동엽 전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출간되었으나
내용이 긴급조치9호 위반이라는 이유로 판매 금지 당함

1979년 유고 시선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발간

1980년 『증보판 신동엽 전집』이 <창작과비평사>에서 간행됨

1982년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으로 '신동엽 창작기금'을 제정

1985년 5월 유족과 문인들에 의해 '신동엽 생가' 복원

1988년 미발표 시집『꽃같이 그대 쓰러진』, 미발표 시집『젊은 시인의 사랑』이
실천문학사에서 간행

1993년 11월 20일 부여읍 능산리 왕릉 앞산으로 이장

주요 시집으로 『아사녀(阿斯女)』(1963), 『신동엽 전집』(1975),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1980), 『꽃같이 그대 쓰러진』(1989),
『금강』(1989),『젊은 시인의 사랑』(198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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