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나, 당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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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4건 조회 405회 작성일 19-05-28 10:34본문
살아있나, 당랑
동피랑
그는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늘 녹색 연미복 아래 관록을 은폐하고 주먹을 엄폐했다
곁에 있었으나 없는 듯했는데, 그러던 여름 각본 없는 출장이 담임 선생님을 데려갔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후두두 교실 밖 구름이 무량수 창을 내리꽂자 꽃밭이 금세 멍든 미나리꽝 같았는데,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미나리를 캐선 안 되었는데, 감히 내가 그어둔 울타리를
며느리밑씻개 따위가 넘어와선 곤란했는데,
그래도 설마 내 눈빛에 그가 두손 싹싹 빌 줄 알았는데, 내가 곧 법이요 법이 곧 나였는데,
아쭈 내 여자 친구도 보는 앞에서 그의 첫인사라는 게 '호 있지, 아비뇽~"
그는 당장이라도 덤빌 듯 가드를 턱까지 올리고 몸을 추켜 세웠는데,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자세로 발을 지면에 박은 채 툭툭 선빵으로 잽을 선물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전학 온 게 무슨 죄 모두가 그를 벌레 보 듯하였으니 살기 위해 본능에 따랐을
뿐이었는데,
전하는 문헌에 의하면 그 삼각 머리 파이터는 일찍이 수박육편(手博六編)과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 검불을 맛봤다는데,
하필 공부도 싸움도 여봐라 하는 통 옆에 앉았다가 기어코 모두가 보는 데서 자웅을 겨루었는데,
그의 번개 권법과 날아서 푸른 초크 앞에 당할 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처럼 그 운명의
빗줄기 상상을 초월했는데,
당랑! 지금도 빛바랜 앨범을 펴면 모골 송연한데,
댓글목록
부엌방님의 댓글
부엌방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어깨를 가만두고 한방 날리는 그의 쨉은 대단하지요
이소룡이 하던 권법인데
당랑권이지요
손으로 다 막어 누구도 근접을 못합니다
잡히면 단단한 삼각 머리에 튼튼한 무세턱으로
잘근잘근하지요
매정합니다
표정도 없는 무심한 놈
의시시한 몸은 푸르기도 하고
밤색이기도 하고 그러지요
가을녁은 그들의 세상입니다
메뚜기도 꼼짝못하는 그의 권법
방아개비도 한방맞으면 날아가지요
풀 등을 좋아하는 그의 정갈함과 고요
언제 날라올지 모르는 쨉에 걸리거나
초크에 걸리면
끝
동피랑시인님
며느리 씻개가 웃고 있는 것
이 특이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셔요
감사합니다
동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졸시보다 댓글이 우아하다는 것은 그 만큼 부엌방이 다른 룸에 비하여 월등하기 때문이지요.
수레를 멈추게 하던 푸른 시절을 돌이보았습니다.
당랑에 대한 섭성을 현미경으로 뚫고 계셨네요.
색이 눈시린 계절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라라리베님의 댓글
라라리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 시를 읽다보니 어디선가 교복에 모자를 삐뚜름히 쓰고
폼잡고 계시던 사진이 떠오릅니다
푸릇푸릇한 시절 속 더 폼잡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나 봅니다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필력이라
그저 박수치고 감탄만 하다 갑니다
저의 어린시절도 떠올리며 흥미롭게 감사히
잘 감상했습니다^^
동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동피랑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 일진 사진은 동피랑 마을에 가시면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교복이랑 모자랑 칠판 등 세트가 마련된 곳인데 공짜로 빌려줍니다.
껌이나 면도날이 필요하면 따로 준비하셔야 되고요.
단지 찻집이니까 차나 한 잔 사 마시면 됩니다. 참고하십시오.
필력이랄 게 있습니까? 다 오십보백보이죠.
고뿔 뽑고 나면 라라리베님 특유의 감각 넘치는 시,
마을에 대자보처럼 걸릴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