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나, 당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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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나, 당랑
동피랑
그는 한 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늘 녹색 연미복 아래 관록을 은폐하고 주먹을 엄폐했다
곁에 있었으나 없는 듯했는데, 그러던 여름 각본 없는 출장이 담임 선생님을 데려갔다는
소문이 돌았는데,
후두두 교실 밖 구름이 무량수 창을 내리꽂자 꽃밭이 금세 멍든 미나리꽝 같았는데,
누구도 내 허락 없이 미나리를 캐선 안 되었는데, 감히 내가 그어둔 울타리를
며느리밑씻개 따위가 넘어와선 곤란했는데,
그래도 설마 내 눈빛에 그가 두손 싹싹 빌 줄 알았는데, 내가 곧 법이요 법이 곧 나였는데,
아쭈 내 여자 친구도 보는 앞에서 그의 첫인사라는 게 '호 있지, 아비뇽~"
그는 당장이라도 덤빌 듯 가드를 턱까지 올리고 몸을 추켜 세웠는데,
한 발짝도 물러나지 않겠다는 자세로 발을 지면에 박은 채 툭툭 선빵으로 잽을 선물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전학 온 게 무슨 죄 모두가 그를 벌레 보 듯하였으니 살기 위해 본능에 따랐을
뿐이었는데,
전하는 문헌에 의하면 그 삼각 머리 파이터는 일찍이 수박육편(手博六編)과 무예도보통지
(武藝圖譜通志) 검불을 맛봤다는데,
하필 공부도 싸움도 여봐라 하는 통 옆에 앉았다가 기어코 모두가 보는 데서 자웅을 겨루었는데,
그의 번개 권법과 날아서 푸른 초크 앞에 당할 자 아무도 없을 줄 알았는데, 오늘처럼 그 운명의
빗줄기 상상을 초월했는데,
당랑! 지금도 빛바랜 앨범을 펴면 모골 송연한데,
댓글목록
부엌방님의 댓글

어깨를 가만두고 한방 날리는 그의 쨉은 대단하지요
이소룡이 하던 권법인데
당랑권이지요
손으로 다 막어 누구도 근접을 못합니다
잡히면 단단한 삼각 머리에 튼튼한 무세턱으로
잘근잘근하지요
매정합니다
표정도 없는 무심한 놈
의시시한 몸은 푸르기도 하고
밤색이기도 하고 그러지요
가을녁은 그들의 세상입니다
메뚜기도 꼼짝못하는 그의 권법
방아개비도 한방맞으면 날아가지요
풀 등을 좋아하는 그의 정갈함과 고요
언제 날라올지 모르는 쨉에 걸리거나
초크에 걸리면
끝
동피랑시인님
며느리 씻개가 웃고 있는 것
이 특이합니다
즐거운 하루 되셔요
감사합니다
동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졸시보다 댓글이 우아하다는 것은 그 만큼 부엌방이 다른 룸에 비하여 월등하기 때문이지요.
수레를 멈추게 하던 푸른 시절을 돌이보았습니다.
당랑에 대한 섭성을 현미경으로 뚫고 계셨네요.
색이 눈시린 계절을 펼치고 있습니다. 마음껏 누리시길 바랍니다.
라라리베님의 댓글

이 시를 읽다보니 어디선가 교복에 모자를 삐뚜름히 쓰고
폼잡고 계시던 사진이 떠오릅니다
푸릇푸릇한 시절 속 더 폼잡고 있던 누군가가 있었나 봅니다
저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필력이라
그저 박수치고 감탄만 하다 갑니다
저의 어린시절도 떠올리며 흥미롭게 감사히
잘 감상했습니다^^
동피랑님의 댓글의 댓글

그 일진 사진은 동피랑 마을에 가시면 누구나 찍을 수 있습니다.
교복이랑 모자랑 칠판 등 세트가 마련된 곳인데 공짜로 빌려줍니다.
껌이나 면도날이 필요하면 따로 준비하셔야 되고요.
단지 찻집이니까 차나 한 잔 사 마시면 됩니다. 참고하십시오.
필력이랄 게 있습니까? 다 오십보백보이죠.
고뿔 뽑고 나면 라라리베님 특유의 감각 넘치는 시,
마을에 대자보처럼 걸릴 것으로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