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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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서는
저 꽃이 백일홍이라고 가리키셨으나,
내게는 가느다란 가지 끝에
살점을 뜯기고 간 여자밖에 보이지 않았다.
구름 바깥으로 자전거를 타고
어느 여자아이가 바람을 맞으며 질주해 갔다.
아직 채 눈을 뜨지 못한
갓난 고양이가 미요미요 하면서 그 뒤를 따라갔다.
백일홍이 혼자 흔들거렸다.
어머니께서는 저건 봄이 얹혀 흔들리는 거야 하고
말씀하셨다.
봄은 무게가 느껴지지 않아요. 그것은 그저 형체 없는 순수한 슬픔 같은 거예요.
나의 입을 빌어 백일홍이 대꾸하는 것이었다.
딱 백일 간만
나와 함께 놀자.
돛을 편 배같은 것이 어머니의 말씀 속을 지나갔다.
어머니의 발걸음을 뒤따라가며,
나는 그 발자국이 어떤 숭엄한 글자같은 것이라고 느꼈다.
댓글목록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묘사가 좋습니다.
보름달처럼 풍성한
한가위보내시길,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명잘 잘 쇠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