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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0회 작성일 19-10-07 00:05

본문



스케치북과 그림판을 들고 내 어린 시절의 산허리를 돌아가면 나만 아는 장소가 있었다.

 

크레파스로 송진 냄새가 다가오는 숲을 엿듣는 것이 좋았다.

 

쓱쓱 검은색 크레파스로 형체를 잡고 파란 크레파스로 무질근한 살덩어리를 눈꺼풀 안에 흘려넣다 보면 소나무들이 심연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었다.

 

높은 데서 부드럽게 융기하는 산자락 따라 응시해 보면 힐끗 보이는 소녀의 여전히 하얀 다리를 하루 종일 반사하는 깃발마다 그 뼈의 숨구멍들이 뜨거운 용해액에 녹아 질척한 불개미떼가 바글바글 오후의 태양을 삼키며 모여들고 있었다.

 

부토(腐土)에다가 숲의 소리를 채색하고 있던 앙상한 늑골 속에서 함몰된 날빛 잎의 균열이 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녀는 내 스케치북 안에서 바깥을 내다보며 가위로 오리고 풀로 붙인 폐 한 쪽이 불꽃놀이처럼 찢겨나간 퍼런 얼룩으로 다물어지지 않는 웃음을 가렸다.

 

소녀의 입이 약간 움직일 때마다 황금빛 풍뎅이가 바르르 떨고 있는 투명한 겹 날개 윙윙거리며 커다랗고 둥그런 것을 애써 굴리며 하얀 치아를 건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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