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물에 장화를 씻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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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싣딤나무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4회 작성일 19-10-21 11:29본문
장화를 벗고 떡이진 진흙덩이를 흐르는 물에 씻는다
무심코 뽑아버린 물 냉이는 이 덩이를 매달고도
꽃으로 살았는데, 나는 담배나 피워 물고 벗은 양말로
장화를 문지른다. 흙에 발을 깊이 묻고 사는 목숨들은
어지간하면 푸르고 향기로운데, 저녁이 오면 부랴부랴
흙에서 캐낸 발을 막 식탁에 올릴 덩이 식물처럼 말갛게
씻고서야 겨우 악취를 면하는 사람은 밑동이 의심스럽다.
장화를 신으면, 갑판 위에 서 있다가 선실로 내려온 발이
맨살에 튀던 격랑을 잊기도 하고, 굽을 버린 육식 동물의
말랑한 발밑을 느끼기도 하지만,
과거처럼 말라서 먼지만 일던 길이 뻑뻑하고 찰 지게
발을 물고 늘어지며 시방으로 돌아오면
발등까지 빠져 들던 진창에 종아리와 무릎까지 빠져드는데,
이 밑바닥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새겨 넣은 모진 무늬들,
욕도 악다구니도 진흙덩이에 새겨진 밑창 무늬처럼 흐르는 물살에
풀어지고,
그 밤의 꿈을 다 꾸어버린 잠이여!
발을 비우고 풀 섶에 누운 장화를 검은 비닐봉지에 담고
반쯤 마시다 버린 맥주 캔처럼 옆구리 찌그러진 봉고차를 타기 위해
머리 조아리러 가는데,
종일 어둠에 맞닿지 않기 위해 목이 뻣뻣하고 길 다란 햇살을 신고
구름덩이를 매달고 달빛을 벌던 낮달도
장화를 벗었는지 뒤꿈치가 말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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