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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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6회 작성일 19-10-22 00:02본문
- 함께 유년의 이끼 낀 담벼락을 달렸던 사촌형에게
자, 다음 역은 심연입니다.
말기암이 걷잡을 수 없이 펴져나가
복수(腹水)가 가득찼다는 새까만 기차가
터널을 통과하여 간이역에 섰다.
햇빛이 쏟아지는 투명한 오후였다.
히야신스꽃이 그를 마중하러 왔다. 빈 꽃병 안에 암컷의 뼈가 그득 들어 있었다.
그는 바닥만을 보고 있었다.
사과나무 가지가 휘어지도록 요란한 새소리가 무거웠다.
직선의 안에는 여러 빛깔들이 함축되어 있었다.
이런 풍경 안에 직선을 긋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매혹시키는 것.
사과알 속 산미(酸味) 가득한 즙이 되어
긴 혀 낼름거리며 나뭇가지와 잎 사이로 직선의 몸을 옮기는 것.
그는 방(房)을 상상하고 있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는 피 고인 폐 안에 머물러 있었다.
배나무 가지가 팽팽히 펼쳐진 돛을 꿈꾸는 한, 선로는 일그러지는 것 속에서 몸부림칠 것이다.
그를 규정하는 것은, 그를 향해 부딪쳐 오는 네 개 벽들이었다. 북극성을 바라보는 손가락에 굳은 살이 박히자, 날아가 버렸던 울새가 돌아왔다.
차가운 시트 안에서 휘파람 소리가 들려왔다. 베개가 너무 높았고, 힘들게 넘어가야 할 숫자들이 종이상자 안에서 달그락거렸다.
그의 손가락은 창문에 불을 붙였고
낡은 역사(驛舍)가 무역풍에 삐그덕거린다. 피오르는 꽃송이마다 형형색색 언어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을 가린 것들이 화석이 된 가지 위에서 목놓아 울고 있다.
그의 꿈은 지금 기차를 멈추고 있는 고통 속에 있다. 그의 몸짓은 詩가 된다. 그는 아름다운 것들에게 제 살을 찢어 먹이며 여기까지 왔다.
유화물감이 묻은 그의 표정 안쪽에 어떤 감촉이 느껴진다.
기차가 조금 더 부풀어오른다. 마악 떠나가려는 허공이 뿌연 수증기로 감싸인다. 그는 호흡의 여러 조합들을 시도해 보며, 형형색색 이미지들이 머무르는 스테인드글라스에 조금 더 가까와지기로 했다.
별자리들이 한낮의 사과나무 위에 내려앉았다.
그는 녹슨 지붕 위에 반듯하게 섰다.
투명한 것 사이의 거대한 틈새가 잠깐 엿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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