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간화선(看話禪)을 통해 죽음을 준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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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3건 조회 405회 작성일 19-10-26 07:10본문
나는 간화선을 통해 죽음을 준비한다
사문沙門/ 탄무誕无
걸을 때도 화두와
먹을 때도 화두와
손을 움직일 때도 화두와
모조리 화두와
또박또박 한 획 한 획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그리고
죽을 힘 다해 그리고
화두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나를 타박하지도 않는다
나를 방해하지도 않는다
고요히 '침묵을 보게끔 한다'
화두가 내 삶의 근본이 되었다
참된 이해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아무리 해도 지치지 않는다
할수록 힘이 나고 상쾌하다
*
*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를 들고 하는 참선(參禪)을 가리켜 간화선이라 합니다.
보여주기식 모양과
좌선(坐禪)에 얽매이는 참선은 옳은 참선이 아닙니다.
이 말의 참뜻은 참선이 우선시되어야 함이 아니라
화두가 제일 우선되어야 함을 강조한 말입니다.
화두만 단단히 잘 우벼쥐면 어디서 무엇을 하든 그게 참된 참선입니다.
그곳이 바로 일등선방입니다.
침묵/ 인간의 본래 성품, 모든 만물의 본래 성품, 붓다
댓글목록
탄무誕无님의 댓글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새벽에 일어나 공부하다가 갓 잡아 올린 글이어서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1연과 2연으로 나뉘어서 정리했고,
2연에서 한 행을 더 밀어 넣어 '언어부림'을 강하게 하였습니다.
몇 군데 시원찮아 언어를 바꿔치기 해서 퇴고하였습니다.
andres001님의 댓글
andres001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外樣 (겉모습)이나, 분별 가득하게 아는 것 (知識)으로는
순일무잡 純一無雜한 청정심 淸淨心에
도달할 수 없음을 느낍니다
요즈음은 껍데기 지상주의라서
외모도 잘나고 달변으로 지식을 뽑내는 이들이
대접을 받는 세상이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들은 화두 話頭를 든
마음의 흔들림 없는 무아 無我의 고요한 경지에서
이루어지는 <진정한 자아의 창조>와는 하등 상관 없는 것
- 특히, 잔뜩 폼 잡으며 선 禪의 모양새를 취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런 건 불교 TV나 절간에서 흔하게 접하게 되고)
자기 자신마저 놓아버린 무아 無我로서의 흔들림 없는 마음에
이르는 길이 꼭이 엄정한 좌선의 외관적 형태일 필요는 없겠지요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일에서 禪은 행하여 질 수 있고
아무런 선입견 先入見 없는 상태로 마음이 하나로 묶일 때
정지 停止함 없는 내면 창조 (깨달음)의 연속일 겁니다
시를 읽으며, 이런 저런 생각에
몇 마디 주절이고 갑니다
탄무誕无님의 댓글의 댓글
탄무誕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도반님의 댓글이 일품입니다.
맛글입니다.
우리 함께 좀 더 육신이 오래 살아 있게 된다면
저랑, 같이 책 냅시다.
도반님이 수록한 모든 글은 제가 '붓다의 눈'으로 평해드릴 테니,
제 글은 도반님의 '해오解悟한 눈'으로 평해주십시오.
전생의 인연이 있고, 이승에 인연이 되었으니
간 뒤에도 우리, 결연結緣을 만들어놓고 갑시다.
훗날 눈 밝은 뒷사람을 위해서 말입니다.
인력人力으로 안 되면 할 수 없고요.
또 되면 인연을 초월한 기연機緣일 것입니다.
제가 행주좌와 어묵동정에서
독하게 화두를 우벼쥘 때 문득문득 일던 생각(영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