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찬(盛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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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2건 조회 342회 작성일 19-10-27 09:15본문
버석거리는 인동초잎이 그녀의 소리로 들렸다.
하얀 천이 배달되어져 왔다.
연한 물빛의 비린내가 한 묶음이 되어 꽃병 안에 꽂혀 있었다.
나와 그녀는 추상적인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았다.
그녀 앞에 놓인 커피잔에서는 빨강색이
내 앞에 놓인 커피잔에서는 청록색이 익사하고 있었다.
그녀가 포말(泡沫)을 접시 위에서 쓱쓱 써는 동안,
내 눈 앞을 헤엄쳐 가는 흰긴수염고래를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험준하고 긴 산길이라는 안데스산맥의 아구아 네그라에도 꽃은 핀다. 산석류꽃이 골짜기를 내려간다.
산석류꽃이
무호흡의 농도를 높일수록
우리는 점점 더 심해로 가라앉아 갔다.
내 표정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명징한 방점이 찍히고 있었지만,
그녀의 가슴뼈는 익사한 색채를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함축적이었다.
나는 겁에 질린 사슴의 머리를 산 채로 씹었고
그녀는 팔랑거리는 사슴의 꼬리를 핥았다.
긴 속눈썹을 투명한 타액과 함께
햇빛 안에 뱉어 놓았다.
파스텔 가루로
텁텁한 부해(腐海)의 풍미를 그려 넣는다.
버둥거리는 쓴 두릅순을 그 안쪽으로부터
나와 그녀는 서로 다른 외국어로 말하였지만,
어쩐 일인지
내가 말할수록 그녀가 시들어 가는 것을
그녀가 말할수록 내가 시들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암전(暗轉) 상태에서 흰 천막을 거두어들였지만,
그녀는 핸드백을 열듯
선운사 동백꽃을 딸칵 열었다.
바람이 한꺼번에 몰아닥치자,
그녀 앞 커피잔에서는 뜨거운 카페라테가 빙빙 돌아갔다.
빈 은쟁반을 들고
명성산(鳴聲山)이 다가왔다.
댓글목록
책벌레정민기09님의 댓글
책벌레정민기09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먼 과거에 잃어버린 표현을
타임머신 타고 되찾은 기분입니다.
참신함이 돋보입니다.
즐거운 한 주 보내세요.
자운영꽃부리님의 댓글의 댓글
자운영꽃부리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밤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