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이 도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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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이 도사리고 있다
열린 창으로
방충망에 걸러 들어온 바람을
블라인드가 잘게 씹고 있다
이빨 부딪는 소리를 낸다
씹히는 소리 바빠질수록
벽을 핥으며 날름거리는 달력
다달이 씹느라
칸칸이 채납되지 않는 날을 핥고 또 핥느라
서슬 퍼런 입술로는 도대체 말이 되지 않아
위아래 이빨 달달 거렸던
아내의 악다구니 같은 소리가 들린다
바람이 불면 불수록 더욱 신나게
씹고 핥는 창을 콱 닫는다
방충망에 낀 하루살이와 모기
칸칸이 소화되지 않은 날이
드륵 딸꾹질 소리를 내며 닫힌다
소릴 삼켰다
북 찢어 둘둘 말아버리고 싶은
잘근잘근 씹어 삼켜버리고 싶은
소릴 삼킨 것은
입 닫은 창인가 혀를 내두른 달력인가
닦달하듯 덤벼들던 입을 막자
이를 악문 창이 부르르 떤다
날 선 블라인드 사이사이 든 빛이
우글우글 노려본다
끝이 말린 달력이 혀처럼
주린 날을 깨워 날름거릴 것만 같다
집안 곳곳 목을 치켜든 침묵만 도사리고 있다
댓글목록
미소님의 댓글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언젠가 한 번 읽었던 시 같습니다
그 때는 뭔지 모르고 읽었는데
오늘 제대로 읽은 것 같습니다
바람새는 문을 닫자 조용해졌다는...
즐감하고 갑니다, 한병준 시인님
한병준님의 댓글

이천 삼년인가 제가 시를 접했을 무렵
이외수 사색상자 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문득 납니다
그책에 상처라는 제목과 글이 생각 나네요
그대는 예술 기술을 구분할수 있는 눈을 소유하고 계시는지요
있다면 모든 예술가들의 내면에 깊이 페인 자혜의
상처들을 볼수 있으시겠지요
그 상처는 눈먼 대중 시인에겐 눈먼 독자를 만날때 더욱 고통 스러워 집니다
라는 ...
미소님이 제대로 읽어 주셨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날이 춥습니다 따스한 겨울 되시고 건필 하시길...^^*
미소님의 댓글의 댓글

분명히 잘 묘사된 시로 읽었습니다, 시인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