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 노릇 하면 내 노릇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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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중생 노릇 하면 내 노릇을 못한다
재가사문在家沙門/ 탄무誕无
모두 다 사라졌을 때
그것이 진짜 부동(不動),
이것을 거창하게 이름 지어 부르기를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깨침의 언어는 달라
뭇사람들이 경험할 수 없는
절대적 역설이 숨겨져 있다
청룡보검(靑龍寶劍, 화두) 거머쥐고
한결같이 마음을 깎아냈다
비바람 몰아치는 속진(俗塵)을 뚫고
진계(眞界)에 와보니 '이미 나는 있었다'
사량분별심(思量分別心)에 목숨 거느라
하마터면 죽어도 못 볼 뻔했던
위대한 발견,
이제 종일토록 길을 간다
'걸음 없는 걸음'으로
*
나, 내 노릇/ 인간의 본래 성품, 모든 만물의 본래 성품, 붓다.
댓글목록
andres001님의 댓글

마음이란 원래 무변무제하고 전지전능한 것이지만..
다생겁에 걸친 업과로 인해
우리가 이승의 세계에 다시 태어날 때
불구 不具처럼 지니고 나오는 마음은
본래의 순수한 마음 (佛心)은
아닌 것
그렇다고 해서, 이승에서 걸치는 옷인 육신을 '자기'라고
고집하면서 무한한 애착을 지니고 살아가는 중생의
삶을 또 다시 이어간다면
다람쥐 체바퀴 돌리는 짓을 거듭할 뿐
사람이 이승이란 또 다른 무대에
태어날 때는 다생겁에 걸친 수 많은 전생들의 업에
의해 비록, 그 마음이 심하게 오염되어 있기는 하지만
수행에 의해 본래의 마음자리를 되찾을 수 있는 것
문제는 자기자신이 여래장 如來藏인 존재임을 모른 채
아무 생각없이 중생으로 살아가는 한
그냥 無明의 중생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는 거 같습니다
귀한 말씀에 머무르며 한 생각,
꼽아봅니다
감사합니다
늘, 건강 보중 하소서
탄무誕无님의 댓글의 댓글

본성에 비친 영감을 잡아 처음 글을 올렸을 땐 매끄럽지 못했습니다.
한 연으로 조져서는 안 될 거 같아서
여명이 밝아오는 시간에 두 연으로 갈라놓았습니다.
몇 군데에서 다른 언어로 끼워넣기, 바꿔치기를 했습니다.
마지막 마침이 단조로웠기에 강한 인상주려고 도치법도 사용했습니다.
글 수정 다잡았습니다.
도반님께서 주신 댓글은 마치
'달마어록과 임제록, 오쇼의 글'을 읽은 거 같습니다.
천 번 만 번 읽어도 맞고, 맞고,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 인간의 본래 성품에 비추어 보면, 말씀처럼 그러하기에 말입니다.
자연적으로 본성(거울)에 반사되면서 읽혀지기 때문에 가슴 뭉클했습니다.
한 생각이라 하시니 너무 겸손하십니다.
건강보감,
생명보감,
본성보감임을 명심하며
건강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땡큐! 열 개입니다.